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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Pan 님

@Tkfrtmsdl

*본 소설은 영화 <퍼시픽림>시리즈의 2차 창작, 패러디 물입니다.
*편의 상 장르는 : 어반 판타지를 겸한 시대극입니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및 실제 단체, 기관은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글쓴이 LimPan의 개인적 해석을 거친, 스토리에 맞게 한 번 더 각색을 한 캐릭터들 입니다. 원작 본편의 캐릭터들과 설정 상 큰 차이가 있거나, 상이할 수 있습니다. 해당 부분에 대한 태클 등은 받지 않습니다.
*본 소설에서는 소재 및 시대 배경의 특성 상 부적절한 인물들, 사상, 단체와 종교, 정치적 논리,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것들에 대한 긍정 등이 등장합니다. 글쓴이 LimPan은 윤리적이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며, 어느 것에도 동의하거나 긍정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본 소설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시대적 배경을 두고 있으나, 공간적 배경은 대부분 글쓴이 LimPan이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지어낸 허구임을 알립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 문화적 형태 등은 어느 정도의 고증을 거쳤으나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이야기 진행 편의를 위해 각색을 거친 부분들 입니다.
* 본 소설에서는 소재 및 시대 배경의 특성 상 수위가 있는 폭력(살해 및 상해를 간접적으로 묘사)이나 그에 준하는 묘사 등이 등장합니다. 수위가 15금인 만큼 어느 정도 중화한 묘사를 하였으나, 해당 부분에 취약하신 분들의 열람을 권하지 않습니다.
* 본 소설은 BL 커플과 그들의 등장을 비중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해당 부분에 취약하신 분들의 열람을 권하지 않습니다. 
*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의 저작권은 영화 배급 및 저작권 관련자에게 있습니다. 본 소설 자체에 대한 저작권은 글쓴이 LimPan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 글쓴이 LimPan의 허락 없는 게재, 무단 복제 및 전재, 인쇄, 캡쳐 등 저작권에 관련한 모든 사항을 금합니다. 



“There is nothing outside of the text.”
-    「Of Grammatology(1967)」, Jacques Derrida

 

***

 

「……미국이 사상 최대의 거래를 준비 중일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의 캐시 앤 캐리 제도를 무효화시킨 루스벨트 호의 향방은 현재 유럽의 연합국을 비롯한 추축국들의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하고 있다. ……」

 

 소지만으로도 ‘불경’할 어조인 종이쪼가리였다. 나치 군의 정보부 소속 허먼 고틀립 박사는 누가 볼 새라 신문지-그래 봤자 찌라시에 가깝지만-를 최대한 구겼다. 누가 갑자기 들어오면 씹어 삼키거나, 조금 있다가 불에 태워버릴 심산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였지만, 고틀립은 주변의 공기마저 눈과 귀가 있는 것처럼 불안해했다. 

 

 그런 고틀립을 등 뒤로 흘끔 본 남자는, 늘 그렇듯 픽 웃고는 하던 일을 마저 하기로 했다. 그의 손은 그가 태어난 이후, 실험 도중 주목할 만한 생물학적 발견의 순간 외에는 처음으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속옷을 가방 맨 밑바닥에 쑤셔 넣고, 여태까지의 모든 실험 결과를 휘갈긴 몇 개의 양장 노트를 소중하게-그러나 역시-가방 중간 즈음에 처박고, 대체 쓸 일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현금과 비싼 시계와 시계줄 따위를 역시 쩍 벌어진 가방의 아가리에 마구잡이로 쏟아 부었다. 


 그건 누가 봐도 행군을 멈추고 ‘잠시 대기’를 명 받은 병영에서 일어날 법한 정상적인 짓거리는 아니었다. 만일 고틀립이 아닌 다른 병사가 봤다면 “자네 미쳤어?” 내지는, 그런 말을 할 애정조차 없는 자의 경우 투철한 제 3국(das Dritte Reich)⑴의 군인이자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벌써 밀고를 했을 것이다. : “어, 여단장님. 야밤에 재미보시는 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가씨, 독일어 할 줄 알아요? 그래요? 그럼 미안하지만 귀 좀 막아주세요. 어, 그러니까 제발 좀 진정하세요. 제 머리를 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니까요. 내일 아시게 된다면 지금 망쳐진 재미보다 더 재미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웬 미친놈 두 놈이 탈영을 하려고 하는데요…….”

 

“뉴트, 이건 미친 짓이야.”

 

존재하지 않는 밀고자 대신,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고틀립 쪽이 그런 그를 만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지랖 넓은 뉴트-뉴튼 가이즐러 박사는 고틀립 박사의 짐까지 엉망으로 쓸어 담으며 윙크했다. 큰 소음과 함께 종이 뭉치 따위가 바닥을 굴렀지만 여전히 사위는 고요했고, 둘은 각자 하던 행동을 마저 했다. : 허먼 고틀립은 뉴튼 가이즐러를 불안하게 응시했고, 뉴튼 가이즐러는 허먼 고틀립의 짐을 마저 쌌다.

 

“허먼, 자기야. 나는 자기가 안절부절 할 때마다 너무 좋더라. 염병할 대장 나리께 보고 할 때도 그렇게 안절부절 했다면 내가 이 빌어먹을 군의 대표 재롱둥이가 되었을 텐데.”


“뉴트, 지금 그딴 농담 따먹기 할 때가 아니라니까.”


“다들 아닌 체 하고 있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조만간 연합군엔 미군이 붙을 거야. 그러면 우리는 내가 연구한 걸 이용해서 정신 나간 짓을 하겠지. 자네의 계산 따위 아무도 신경 안 쓸 걸? 오! 이게 무슨 소리지? 방금 들었어? 근 미래의 내가 자네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 통쾌하게 웃는 소리 말이야!”


“내가 설계한 암호화 방식은 아무도 못 풀어. 미국이 붙어봤자―”


“방금 그 말, 우리가 갈 곳에서는 꿈에도 할 생각 마.”


“뭐라고?”


“우리가 갈 곳에서는 꿈에도 생각 말라고.”

 

가이즐러가 빈 낯을 들어 고틀립을 응시했다. 고틀립의 앞에서 화를 냈으면 냈지, 정색은 한 적 없던 가이즐러 치고는 낯선 반응이었다. 그런 고틀립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다시 입 끝부터 천천히 올라가던 가이즐러의 웃음은, 이내 눈을 지나 만면에 다시 미소를 피웠다. 입으로는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의 메인 곡조를 휘파람까지 불고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 안 들어, 허먼? 내가 신을 따르는 종자는 아닌데, 어쨌든 그 양반이 창세에 뭔가 좀 잘못했다는 생각. 세상은 분명 인류에게 넓은데, 우리에게는 너무도 좁지.”


“젠장, 뉴트, 아니 가이즐러 박사! 제발. 우린 감당할 수 없는 짓을 해선 안 돼.”


“아니. 허먼, 우리가 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런 우리의 언행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 가설이 맞아 떨어진단 거야. 세상은 ‘우리’를 담기에 너무도 좁아. 불세출의 천재들, 곧 베니 굿맨⑵의 뺨을 칠 베를린 놈과 그 놈의 옆에서 박수나 쳐 줄 오스트리아 근처 시골에 살던 놈, 그리고—”

 

자신의 것처럼 볼록하게 부푼 군용 백 팩을 고틀립에게 내민 가이즐러 박사가 씩 웃어 보였다.

 

“동성애자들.”


“제발, 뉴트!”


“자네가 애원할 적마다 새로운 성적 취향을 발견할 것 같다니까! 이제 그만 좀 닥쳐봐. 우린 전략 상 다음 행동을 해야 한다고.”


“그게 뭔데? ‘어찌되었든’ 적국에 잠입한다?”


“잠입이라니, 말도 참 험악하네. 우린 거기로 망명하는 거야, 고틀립 박사. 모든 건 다 준비되었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빌어먹을 놈의 한 발자국 전진과 존재하는 지 도통 알 수 없는 자네의 용기나 좀 채우는 것뿐이지.”

 

가방을 맨 가이즐러가 고틀립을 응시했다. “자네는 여전히 우리가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군. 그렇지? 우리의 끝은 노을이 죽여주는 어느 해변이 아니라, 수용소 내지는 대가리에 7.92mm 쯤 되는, 납으로 만든 불쾌한 친구를 처박은 채 진창에 구르기 놀이나 실컷 할 거라고?” 고틀립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이나 군화 끝을 노려보았다. “뉴트, 나는, 난……. 자신이 없어. 이건 확률적으로 미친 짓이야. 내가 계산을 해봤는데—” 가이즐러는 손을 들어 고틀립의 입술 위에 손바닥을 꾹 내리눌렀다.

 

“자네에게 나는, 메스 들고 스윙에 맞춰서 남의 배때지나 갈라보는 가볍고 한심한 놈인 거 알아.”

 

“그렇지만 허먼, 나도 생각이라는 게 있어. 내가 미쳤다고 자네를 위험에 빠뜨리겠어? 젠장, 내가 자네를 밀어버리고 싶을 때는 상관 앞에서 우리가 연구 결과로 충돌할 때뿐이라고. 그 염병할 기분도 ‘진짜 물리적인’ 자네의 등을 떠밀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란 말이야.”

 

고틀립이 눈을 깜빡였다. 불만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는 최대한 한 가이즐러의 ‘염병할’ 손가락들을 물어 뜯는 짓은 자제하는 것 같았는데, 이 모든 ‘미친 계획’을 짰다고는 하나, 눈 앞의 가이즐러가 사실은 그의 둘도 없는 연구의 동반자이자-물론 대체적인 결과가 거울 같기는 했다. 그러니까, 높은 확률로 반대에 가까운 결과가 도출되고는 했단 뜻이다-, 또한 감정의 동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 둘이 서로를 짝사랑 한 건 꽤 됐지만 그 사실을 서로에게 떠다 먹이듯 까발려주고-난리도 아니었다고, 가이즐러는 가끔 그 때를 생각하며 웃고는 했다. “기억나? 자네가 그 멍청한 보고서를 던져대고, 나는 믿기지 않아서 플라스크를 깨 버렸지. 웃긴 건, 둘 다 울고 있었다는 점이야. 병영에서는 기어코 미친놈 둘이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울고 말았다고 소문이 나긴 했지만.”-, 서로를 가장 원하던 관계 속에 묶어 의미를 쌓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됐다. 

 

“여기서 자네와 불안하게 살고 싶지 않아. 게다가 죄 없는 인간들 배나 가르고 괴상 망측한 가스나 먹이는 미친 짓은 나도 사양이라고. 이건 정말로 잘못됐어. 나도, 난……난 그렇게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놈은 아니지만, 이 빌어먹을 짓들 모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 자네도 느꼈잖아! 자네도 직접 봤잖아, 그 괴물 같은 결과와 제정신 아닌 실험들을! 자네가 늘 그랬잖아! : “뉴트, 이 모든 게 정말 자네가 하고 싶은 짓이야?” 그래, 이건 인정하지. 허먼, 자네가 맞아. 이 미친 짓은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냐. 동물 실험이면 몰라도……. 젠장, 그래, 알았어. 그렇게 보지 말라고. 어쨌든 난 빌어먹을 생물학을 연구하는 놈이니 어쩔 수 없단 말이야. 


 물론 나도 알아. 양키들이라고 다를 거 없어. 미국에 간다 치더라도 우리는 평생 우리의 관계를 숨기고 친구인 척 해야 고작일 거야. 유태인들 대신, 흑인 같은 사람들이 그 가엾은 위치를 대신하겠지. 거기에도 또 다른 빌어먹을 차별 같은 게 우글거리고 있을 거라고. 내가 그랬지. 저 위에 계신 양반-물론 난 없다고 보지만-이 창세에 뭔가 잘못했다고. 뭔가 정말로 부족하다고. 이 세상에는 말이야, 허먼, 천재들과 동성애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어. 자네가 그토록 꿈꾸는, 완벽하게 계산에 맞아 떨어지는 세상 따윈 없단 말이야. 하지만 이 빌어먹을 곳보단 나을 거야! 최소한 미친 실험은 그만 둘 수 있잖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기 전에 우리 손으로 멈출 수 있어.”

 

가이즐러가 처음으로,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멀리서 무엇이 울부짖는, 혹은 흐느끼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아니면 고통에 미친 비명일 수도 있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그 둘은 동시에 가이즐러의 최근 연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가이즐러가 온갖 핑계를 대어서 미룬 실험에 대해 군 당국은 조급함을 보였다. 결국 가이즐러는 잠시 내버려두고 완성을 위해 무엇인가를 더 하는 모양이었다. 행군을 멈춘 사이 완성을 보고 싶다고 강요한 것은 수뇌부들이었다. 고틀립은 이 실험에 한해서는 권한이 없었으므로 아무런 말도 못 했고, 가이즐러는 오만 핑계와 개소리 따위를 주워가며 그들의 조바심 섞인 강제를 피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제 할 말도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빌어먹게 가엾은 영혼들 같으니. 물건이 완성 되면 가까이서 보고 싶었단 말 전면 취소야.” 가이즐러는 한숨을 쉬었고, 허먼은 숨을 죽였다. 둘의 낯에 긴장이 배어들었다. 가이즐러는 급히 군용지급 손목시계를 노려봤다. 약속한 곳까지 가려면 빠듯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을 법한 시간이었다. 


 미국에는 겨우 남은 연줄을 이용해서 연락을 해 둔 상태였다. 망명에 대한 물밑 작업은 물론, 사실 상의 행정 절차까지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두 박사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 끝날 계획이다. 물론 ‘저 치들’의 경우 그다지 완벽한 신뢰가 가진 않지만, ‘그들’은 ‘가이즐러 박사’와 ‘고틀립 박사’의 연구 결과, 그리고 그 두 박사가 미래에 쌓을 연구 업적까지 욕심 내고 있었다. 하긴, 둘이라면 어느 나라든 마다하지 않았을 터였다. 


 따지고 보면 고를 수 있는 곳은 많았다. 그렇지만 가이즐러는 기왕 벗어날 것, 이 빌어먹을 유럽 땅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바다라도 건너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할 지 모른다는 희망은 항상 가이즐러의 마음 한 켠에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완성은 허먼 고틀립이 있음으로써 완성되었다. 꿈꾸던 날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그들은 가야 했다. 반드시 지금 떠나야 했다. 가이즐러가 고틀립의 입술 위에 덮어두었던 손을 치웠다. 고틀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뉴트. 이건 안 될 일이야.”


“안 될 일이라고?”

 

가이즐러는 문을 노려보았다. 저 문을 열고, 빈 조립 공장을 지나서 당직 순찰을 도는 몇 몇의 병사들을 지나면 된다. 숲에 숨겨둔 바이크를 타고 FBI 요원과 접선 지역에서 만난 후에, 허먼 고틀립과 함께 이 빌어먹을 나라를 뜨면 그만인 것이었다. 잘 훈련된 병사도 제대로 못 해낼 짓인 건 인정했다. 하지만 가이즐러가 충동적이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이 모든 계획을 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최소한 2년 전부터 이 모든 일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가이즐러는 이 탈출에 그의 미래와 목숨, 안정, 명예 따위의 것들을 건 도박을 하고 있었다. 그가 딸 수 있는 판돈은 이것이었다. : 허먼 고틀립과 함께할 수 있는 미래.
 
“세상에 안 될 일 같은 건 없어, 허먼. 그걸 가 한다면 말이야.”

 

문고리를 쥔 채 가이즐러는 몸을 반쯤 돌려 손을 내밀었다.

 

나를 믿어, 허먼 고틀립. 이건 될 일이야.”

 

 


Pull My Trigger

 

written by LimPan(@tkfrtmsdl)
- Parody of “Pacific Rim”, Newton X Herrman X Newton

 

 

<Old Man Blues>
  전쟁은 끝났지만, 각국은 여전히 자신만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어도 여전히 많은 문제가 들끓었다. : 냉전, 외교적인 문제, 문화적인 문제, 각종 사회 문제, 문화적 충돌, 여전히 자리한 혐오 등등.

 

 2차 대전의 연합군 측 개선 영웅이자 현 FBI의 수장인 스탁커 펜테코스트 역시 그 내부 몸살에 휩쓸리고 있는 중이다. 전후 FBI는 그야말로 내•외부 가릴 것 없이 오만 문제를 감수해야 했는데, 예를 들면 CIA와의 좋지 못한 사이나 주 정부 경찰과의 지긋지긋한 주도권 싸움, 마피아들의 기승, 어수선한 사회에서 빚어지는 각종 범죄 참극 등이다.


 CIA의 출현으로 정보기관의 명분을 잃은 FBI는 각 처에서 CIA 인사들과 부딪치기 일쑤다. 혹은 CIA에서 질세라 시비를 걸어오거나. 특히 시비의 경우, 가장 인기 있는 명분은 펜테코스트 그 자신이었다. 비록 트루먼의 서명을 얻어냈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한 ‘흑백분리’ 인식의 멱살을 잡다 못해 대가리를 날린 사건이라도 봐도 될, 흑인인 스탁커 펜테코스트의 FBI 수장 기용은 더욱 더 서로에 대한 불화를 부추겼기 때문이다-가끔은 같은 FBI의 놈들이 시비를 걸곤 했다. 혹은 목숨을 걸고 펜테코스트를 끌어내려버리려고 하거나. 어쨌든 펜테코스트의 기용 명분은 위대한 미국의 전쟁 영웅이었으니 이 모든 것은 부질없는 물밑 싸움이기는 했다. 그리고 그 망할 놈의 서명도 있었고. “그래, 그 빌어먹을 놈의 싸인 하나가 사람 목숨보다 귀하다 이거지.” FBI 사무실 쓰레기통을 자주 갈아주던 흑인 여자 하나가 자주 빈정거리던 말이다-. 


 부처끼리 잘 소통할 것이라고 믿는 일부 ‘대가리’들의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이었을 뿐이었다. 주도권이란 놈이 가진 매력은 반짝거리는 금화만큼이나 값졌기 때문에, 높으신 양반들의 눈 먼 기대는, 늦잠꾸러기가 주말마다 헌금 봉투에 깨작거린 소원만큼이나 의미가 없었다. 

 

 주 경찰이나 시 경찰과도 마찬가지다. 1929년, 후버 대통령이 형사사법개혁을 한 뒤로 정치적 간섭 배제를 약속 받은 주와 시 경찰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구역’을 굳히길 원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O.W.윌슨과 그 친구들이 지속적으로 외친 경찰업무 혁신에도 시동이 걸리는 참이었다. 경찰들은, 분명 연방에 속했지만 또한 어느 정도 독립 적일 수 있는 자신들의 위치를 계속해서 확인 받고 싶어했다-어디까지나 FBI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경찰들에게 이런 진술을 그대로 했다가는, 그 말을 지껄인 놈의 대가리를 먹고 있던 도넛으로라도 깨보려 노력할 것이다-. FBI는 나름대로 연방 안에서 자신의 권한을 지켜야 했고, 또한 주나 시 경찰만큼이나 자신들의 영역을 확고히 하려고 했다. 수사나 행정 처리라는 부분은 어쨌든 사실 관계와 책임 관계가 명확해야 골이 덜 아픈데다, 이 두 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공은 공대로 가로채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협력응원관계라곤 하지만 늘 그렇듯 FBI와 주, 시 경찰과의 관계는 견원지간을 시대적으로 새로이 정립할 만큼 소원했고 그건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듯했다.

 

“지긋지긋하군.”


“삶이란 게 원체 그렇지 않나.”


“허크.”


“스탁커. 자네는 볼 때마다 십 년은 더 늙어있는 것 같아.”


“아들은 잘 지내나?”


“말도 말게. 애 엄마가……그렇게 된 이후로는, 도통 내 말을 들어 처먹질 않네.”

 

생각만 해도 두통이 인다는 듯, 아네블럭(Aneblug)⑶ 시의 경찰청장인 허큘리스 “허크” 한센이 고개를 젓는다. 한센은 막 뽑은 커피 한 잔과 자신이 마시던, 반쯤 식은 커피잔을 쥔 채 스탁커 펜테코스트의 옆에 와 앉는다. 

 

“결국 이번 FBI 파견에 모리 양이 수사관으로 투입되었던데. 베켓 수사관과 함께지?” 


“그렇게 됐네.” 


“자식들은 늘 부모를 이겨먹으려고 하지. 실제로도 이기고.”


“사건들이 커지지 않길 바랄 뿐이야.”


“설마 전장만 하겠나. 알아서 곧 잠잠해질 거네.”

 

둘은 2차 대전 때 함께 참전한 참전 용사로, 같은 부대에 배치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FBI의 수장과 시 경찰의 청장이라는 위치에 있긴 하지만 둘은 공식석상이든 ‘오프 더 레코드’이든, 가깝게 지냈고 그 관계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과묵한 데다 말도 할 수 있는 한 간략하게 하는 한센은, 둘의 친분 넘치는 관계 때문인지 펜테코스트가 곁에 있으면 자신이 알고 있는 표현과 단어가 많다는 걸 가끔 주변에 상기시켜 주고는 했다. 이는 과묵하기로는 둘째 가면 서러울 스탁커 펜테코스트 역시 마찬가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귀한 걸음을 행차하셨나? 자네 일을 좀 덜어줘 보자면, 그 독일인들은 잘 살아있네. 심지어 꽤 잘 지내고 있지. 아무래도 전후 직후인데다 독일인들이라, 시골 인간들 감정 때문에 둘 다 결혼이야 물 건너 간 것 같지만. 타운 주민들 눈치가 보여서 미국인인 체 하는 걸 구경하는 게 꽤나 재미있는 일이야. 애들 쪽에서 불만이야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다들 지켜주는 척이라고 하고 있어.”


“가이즐러 박사와 고틀립 박사 말이지?”


“그래, 그 빌어먹을 나치 놈들.”


“나바호 어를 이용한 코드 토커 활용 및 암호화 전략과 그 체계를 정립한 건 고틀립 박사⑷였어. 지역에 따른 인간 행동과 발육 차이를 지적해서 병사들의 신체를 활용한 전략 보강 및 보완, 각종 의료적 문제들에 도움을 준 건 가이즐러 박사였고.”


“전쟁도 끝났고, 비록 CIA에게 지분을 빼앗겼다곤 하지만, 그런 기밀 정보를 술술 불어도 되나?”


“자네라면 저승에서조차 입을 닫고 있을 걸 알기 때문이지. 지역 대학 출강은 어떻다던가? 보고 받은 바로는 꽤 괜찮은 수준이던데.”


“맞네. 그들이 시립 대학에 출강하자마자 폐강이 될 줄 알았는데, 젊은 놈들 속 꼬인 건 똑같아. 오히려 나치를 배반했다는 배경이 좋게 보인 모양이야. 그 절름발이 독일인, 이름이 고틀립이지? 건너오다 총상을 입고 그렇게 됐다고 했던가? 그 쪽이야 워낙 꼬인데다 말을 이상하게 해서 학생들 측에서 반발은 좀 있다고는 하지만 괜찮게 적응은 해가는 것 같네. 그 딴따라 같이 생긴 놈은 흙 밭에 굴려도 잘 살아올 놈이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우리 측에 연락을 먼저 해 온 건 가이즐러 박사 쪽이었어. 내가 군에 있다는 건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목숨 걸고 감행한 망명이니 허튼 짓은 안 할 거야. 최소한 몇 년간은 말이지.”


“그들을 어떻게 믿지?”


“완전히 신뢰한다고는 한 적 없네, 허크. 당장에는 적당히 눈 감아 준다는 것이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필요한 자들이고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둘은 한참이나 아네블럭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청명하다. 그 모든 복잡한 문제는 지상에게 떠넘긴 채 홀로 유유자적이다.

 

“그 일도 일이었지만, 오늘은 좀 다르네. 공식적으로 ABPD와 조금 골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해.”

 

마침내 펜테코스트가 먼저 말을 한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센은 식은 커피를 마저 들이키며 묻는다.

 

“그―”

 

 

***

 

 

“―빌어먹을 깡패 놈들!”

 

 허먼 고틀립은 씩씩거리며 서툴게 지팡이와 함께 걸음을 옮긴다. 오다가 몇 번 종이 봉투에 든 빵이며 사과 따위를 흘릴 뻔 했지만, 전생에 사마리아 출신이 아니었을까 의심되는 한 두 명의 학생이 도와줘서 겨우 교수 실이 있는 층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이후 짐은 옆의 ‘베를린 산 촉새’가 가져간 탓에 고틀립은 배정된 교수실 문 앞까지 지팡이와 걸음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다.

 

“왜. 또 누가 자네 연구를 휘갈긴 종이쪼가리에 미키 마우스라도 그렸대?”


“아니.”


“그럼 자네 가방에 몰래 선정적인 잡지라도 끼워뒀나?”


“아니!”


“흐음, 그럼 자네가 서야 할 교단에서 벗고 뒹굴기라도 했어?”


“이런 젠장, 뉴튼! 마지막 것 빼고 모두 다 자네가 한 짓이잖아!”

 

 문을 쾅 열어서 들어간 고틀립의 뒤를 따라 들어가, 경쾌하게 발로 차 문을 닫은 뉴튼 가이즐러가 묻는다.

 

“마지막 걸 내가 안 했다고 누가 그래?”


“뭐, 뭐라고, 이 자식아?”


“진정해. 농담이었어.”

 

당장에라도 지팡이를 들어 가이즐러를 죽도록 팰 것처럼, 고틀립의 갈색 눈이 위협적으로 번들거린다.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올려 제스처를 한 가이즐러는, 정갈하게 정리된 고틀립의 책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아서 고틀립이 소중하게 지켜낸 갈색 종이봉투를 뒤진다. 샐러드 용으로 잘 잘려 포장된 당근 한 봉지를 꺼낸 가이즐러는 양심의 가책 하나 없이 주인 앞에서 서리한 야채 팩을 뜯는다. 그리고는 고틀립에게 주지도 않고 자기만 한 개를 꺼내 먹기 까지 한다.

 

“대체 무슨 일인데?”


“조교가 죽었대.”


“와. 그거 정말 웃기는 농담이네! 자네가 살아생전 한 모든 농담 중에 최고로 웃겼어! 축하해, 허먼!


“농담 아냐.”


“이런, 썅, 진짜야?”


“방금 떨어트린 당근 쪼가리 주워, 뉴트. 농담이 아닐 경우 다른 확률이 딱히 뭐가 있겠어.”


“오, 이런, 허먼……. 그러게 내가 연구는 살살 시키라고 했잖아.”


“맹세코 농담 아냐, 뉴트! 여, 염병할 깡패 자식들이 금주법 시대인지 전쟁인지를 뇌에서 못 밀어낸 나머지 대로변에서 초, 총을 가, 가, 갈겼다고!”


“어……. 우리 오늘 여기서 자고 갈까?”


“이게 그걸로 해결 될 문제라고 생각해?”

 

고틀립의 눈꺼풀이 분노로 덜덜 떨린다. 가이즐러는 허둥지둥 당근 쪼가리를 주우랴, 놀라서 같이 떨군 책을 갈무리 하랴 정신이 없다가 그제야 고틀립의 상태를 살핀다. 그는 반쯤 남아있던 장난기 마저 날려버린 채 허먼의 양 손을 꽉 쥔다.

 

“허먼. 경찰에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하자. 우리가 죽으면 가장 곤란할 놈들이니까 차라도 태워줄 거야.”

 

가이즐러는 고틀립이 이전보다 더 총소리를 혐오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건 순전히 자기 자신, 뉴튼 가이즐러의 탓이라는 것도. 


 ‘차라리 독일에서 탈출하지 않았다면’이란 가정은 가이즐러가 별로 좋아하는 게 아니지만, 최소한 허먼 고틀립의 두 다리는 멀쩡했을 것이다. 목 위의 것이 어찌 되었든 말이다. 겨우 미국 내 연줄을 통해 FBI에게 연락한 건 좋았는데, 제대로 된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한 두 연구자의 탈출은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이었다. 둘은 진창을 구르고,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사건들과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몇 개나 넘기며 마침내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서 당시 복무 중이던 스탁커 펜테코스트와 만날 수 있었다. 

 

 문제의 사고 또한 만나긴 했지만.


 그 날, ‘그 때’, 가이즐러가 한 발만 더 늦게 있었다면 지금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하는 건 가이즐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이즐러보다 행동이 굼뜬 고틀립이 하필 국경을 넘는 와중 허리 부근에 총을 맞았다. 전장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치명상은 아니지만 중상이었다. 고틀립은 살았고, 살아서 가이즐러와 함께 미국에 왔다. 그리고 그는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 후로 고틀립보다 ‘한 발 더 늦게’ 걷는 것은 가이즐러의 버릇이 되었다.


 그 사건은, 가이즐러에게 일종의 성서의 원죄와 같이 자리잡았다. 성경도, 신도 믿지 않고, 계획보다는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가이즐러지만 그 사건 이후로 최소한 한 단계 정도는 생각을-혹은 생각만-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고틀립의 다친 다리가 도로 멀쩡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허먼, 미안해. 우리 귀가 문제를 통틀어서, 이 미친 총잡이 놈들 사건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됐어. 이상한 소리 마. 어쨌든 요는, 자네도 나도 당분간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 생각보다 큰 일인 모양이야……. 사실 제대로 못 들었지만, 뉴스에 며칠 나오고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아.”


“대체 무슨 일인데? 오늘 하루 종일 뉴스란 놈하고 담을 쌓았다고. 빌어먹을 실습실에 처박혀서 지능 낮은 놈들이 헛 짓 하는걸 의무 상 구경하느라.”

 

 

고틀립은 지팡이 손잡이 끝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쉰다. “당분간 만두는 그만 먹는 게 좋겠어, 뉴트. 펜테코스트에게 우리 거처를 임시로라도 옮겨달라고 전화해야겠어.” 가이즐러의 초록색 눈에 불안함이 깃든 것을 알아챈 고틀립은 더욱 무겁게 한숨을 쉰다.

 

 

 “차이나 타운에서 시작됐다고 해. 그 왜 한창 차이나 타운 쪽과 도시 외곽 지역에서 마피아들 사이의 신경전이 있었잖아. 결국 터진 모양이야. 이 모든―”

 

 

 

***

 

 

 

 “―머저리 같은 짓들이야. 그래, 머저리 놀음이지, 따지고 보면.”

 

 

잘 벼려진 발리송 나이프의 칼날을 살펴보던 남자가 말한다. 지나치게 낮은 목소리는 음산하기까지 하다. 

 

“전쟁이란 게 말이야, 짭짤하긴 하지만 멀리서 보면 머저리 놀음이란 말이야. 나라를 위해 뛰어들라고 온갖 삐라는 다 뿌려대면서, 뒤에서 시체를 대량 생산하고 무기 팔아서 돈 좀 건지는 놈들이 우글우글 거리지. 그런 주제에 또 엄숙한 체 하고 훈장이나 뿌리고 있으니, 얼마나 웃기겠나? 우리 같은 놈들이야 이거나 그거나 이긴 하지만. 대가리에 뭐 좀 채운 높으신 나리들께는 얼마나 가슴 아픈 사건이야. 안 그런가, 판사? 친애하는 디케 양께서 이 빌어먹을 짓거리를 몽땅 때려 치우라고 할 날도 머잖았겠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커다란 체구에 잘 빠진 비단 양복을 걸친 남자는 내면이든 외면이든, 어딘가 결함이 있어 보인다. 씩 웃는 큰 입 위에는 눈 대신 까만 선글라스가 자리해 있는데, 선글라스 너머로 안구의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맣다.

 

“이 칼 말이야. 어떻게 굴러온 물건인 줄 알아?”

 

입에 재갈을 물린 통통한 체구의 남자가 고개를 빠르게 젓는다. “이것도 전쟁의 산물이지. 이번 전쟁이 끝난 후 미군 놈들이 필리핀에서 주워온 물건이야. 여러모로 개조를 거치긴 했지만 쓸 만 하지. 예를 들어줄까?” 사지가 묶인 남자의 옆에 와 쭈그려 앉는다. 몸을 웅크렸음에도 큰 체구는 쉬이 숨겨지지 않는다. 

 

“예들 들어―”

 

 “이런 용도에 적합하지.” 찰칵거리던 칼날을 바라보던 그가 직경으로 묶인 남자의 경동맥에 직각으로 꽂는다. 입에 피를 뿜으며 쓰러진 남자를 발로 쿡쿡 건드리던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남자와 그의 일을 조용히 지켜보던 눈들에게 말한다.

 

 “물건들은?”


 “하나 빼고 입고 됐습니다. 큰 놈 말입니다, 보스. 놈이 말하길, 아직 생산 단계 전이라고 하더군요. 곧 시제품을 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적당한 때에 신호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급할 거 없어. 피라미부터 처리하자고. 입찰자들은?”


 “셀 수가 없어서 잘라내야 할 정도죠.”


 “이번엔 좀 넓혀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아래 쪽 좀 둘러봐. CIA와 FBI가 그렇게 집안 싸움을 좋아한다던데. 혼란한 틈을 타서 발이라도 넓혀야지. 친목 도모 말이야.”

 

 “친분은 말이야, 살면서 중요한 거야. 적당한 친분 말이지.” 쓰러진 남자의 것이었던 옷가지에 튄 혈액을 닦아서 도로 버린 그가 잊었다는 듯 다시 그들 쪽을 바라본다.

 

 “그나저나 그 동쪽 애송이는 잘 지내고 계신가? 보내 준 딱총은 맘에 든대?”

 

 

<You Make Me On My Own>
  신문을 펴거나 TV, 라디오 등을 켤 때마다, 세상은 기대한 것만큼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해, 폭력, 혐오, 비난 따위의 단어들이 지면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삶은 부강해졌지만 그건 한 줌의 일부 집단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나머지는 그 안에서 정당히 자리를 잡거나 그 적당한 자리조차 잡지 못해서 발을 구르기 일쑤였다. 


 난리는 개인의 삶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에 따르면 전쟁보다 더 살벌한 언어들이 국가 단위를 뛰어넘어 오간다고 했다. 칼만 빼 들지 않았지, 그것 역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번 전쟁의 룰과 명분은, 간략하게 요약하면 하나였다. :  주류 주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대 주장과 그 나머지를 죽여야만 했다. 


 세상사에 대해 한참 떠들어대는 앵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옆에서 코가 붉어진 사내가 중얼거린다. “전쟁이 끝났다고? 말도 안 돼.” 맞는 말이다. 당장 뉴스만 봐도 전쟁은 늘 근처에 있는 것 같다.
 


 그건 일종의 불문율이다. 뭔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쨌든 반대쪽에 있는 놈이 죽어야 했다. 하나의 승리는 하나 이상의 희생을 딛고 선 깃발과 같았다. 정부는 호황의 연속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아래층에 위치한 사람들일수록 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불안의 시대란 걸.

 

 

 누군가는 변화가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쟁이 의도치 않게 경제에 활력을 주었고, 그걸 동력으로 열심히 계층이 나뉘고, 그 계층은 다시 열심히 서로를 뜯어 죽이는 탓이라고.


 비단 한 나라의 문제에서 끝날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2차 대전의 종전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 되었다. “우리가 모두 속은 것이죠.” 따지고 보면, 이라고 말을 시작한 라디오 속의 또 다른 남자가-전문가 선생 어쩌고 하는 그 양반 말이다-말한다. 그는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거시적인 부분들을 분해했고, 경제의 흐름과 개인의 소득관계 따위의 미시적인 부속물들을 단정하게 늘어놓기 시작한다. 문화적 반발, 이례 없는 전쟁 특수가 가져다 준 호황 속 젊은이들의 반항 따위는 문제도 못 됐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사투입니다. 숨을 쉬는 것 조차요.” 비극을 관찰하는 것 치고는 시적인 표현이라고, 쪼개 웃던 그의 옆에 누가 와 앉는다. 요 일 년 간 얼굴을 꾸준히 익혀가는 친구다. 둘 다 이방인이었고, 지역 사회에 잘 숨어들어가지 못하기-혹은 그럴 생각이 없기-때문에 들인 시간보다 더 빠르게 얼굴을 익혀가게 되었다.

 

 “자네가 올 줄 알았어!”


 “나도 자네를 기다리긴 했어, 앨리스. 그런데 이름이 진짜 앨리스야?”


 “아, 이제 와서 이름이 무슨 상관이야, 뉴트. 우리가 이렇게 부르고 지낸 지가 벌써 일 년이 다 돼가는데! 잘 지내나?”


 “나 말이야?”


 “아니, 자네 말고!”

 

이해했다는 듯, ‘친구’가 바텐더에게 술을 받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어제까진 괜찮았어.” 어제까지는? 되묻는 그의 말에 ‘친구’는 고개를 젓는다. 

 

“말도 마. 동네에 깡패가 얼마나 기승을 부리는데. 그 왜, 계속 사이가 안 좋다던 화교 조직들 말이야. 뭐랬지, 어느 쪽이 반대편에게 뭘 도둑맞고, 또 다른 쪽은 그 반대편에게 대신 다른 걸 뺏고 그렇게 지냈다며? 민족 보호의 명분으로 말이야. 결국 둘 다 잘 안 됐나 봐. 이제는 총까지 갈긴다니까. 허먼은 무척 예민해졌어. 그럴 만도 하지. 툭하면 총 갈겨대는 미친 놈들이 컨테이너 단위로 동네에 굴러다니니까.” 


“뉴스에서 들었어!” 


“나는 이제서야 들었는데. 다들 뉴스만 듣고 사는 모양이야.” 

 

툴툴거리던 ‘친구’와 함께, 그는 다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주제는 벌써 다른 것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여간 바쁜 세상이야. 안 그래? 구불구불, 끝도 없는 문제 덩어리들이지!”


“돌아가는 꼴이야 늘 그렇더라고. 나야 허구한 날 생물체 내장이나 쳐다보고 있으니 모든 게 좀 굴곡져 보이기야 하지만.”


“일은 잘 되나 봐?”


“그것도 말도 마. 학장이 허구한 날 뒤통수 터지게 노려보는데 간지러워 죽겠어. 연구 결과는 언제 나오냐고, 한참 더 남았는데 자꾸 들들 볶질 않나, 가르쳐야 하는 머저리들은 내 말을 반도 이해 못 해. 이럴 것 같아서 교수직은 안 하고 싶었는데. 미국 놈들은 다 머저리 인가 봐.”


“워, 지식의 선도자는 언제나 힘들고 힘에 부치는 법이지!”


“그러는 자네는 어때. 한다던 일은 잘 돼 가?”


“사전 시험을 하나 해 보는 중이야. 곧 결과가 날 것 같아! 그래도 자네나 그 친구는 지내기 괜찮은 편이잖아.”


“글쎄.”

 

‘친구’가 단숨에 술을 털어 마시고는 웃는다. 

 

“잘―”

 

 

***

 

 

“―모르겠어. 도통 모르겠단 말씀이야.”

 

‘1번’이 불퉁하게 말한다. 누가 봐도 덕지덕지 붙은 짜증이 두껍게 얼굴을 감싸고 있다. 

 

“대체 뭘 모르겠다는 건데, 이 빌어먹을 자식아.”

 

도사견들을 둘러보던 ‘2번’ 역시 짜증내듯 답을 한다.

 

“처음엔 이 손바닥만한 곳이 ‘작업하기’ 괜찮은 곳이라고 했잖아. 모든 게 준비되어 있던 것 같았다고. 애초 우리의 타깃이 이쪽으로 이동할 줄은 몰랐지만, 적어도 한 달 전 까지는 괜찮았어. CIA나 FBI 놈들이야 내•외부적으로 피 터지는 중이니 적당한 때에 집어만 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그래. 모든 게 다 꼬여버렸지, 젠장. 이 조막만한 도시에 한꺼번에 모든 사건이 터질 건 뭐냔 말이야. 타깃은 도망가고, 갑자기 마피아들은 미친 짓이나 해대고. 모든 경찰 병력이 아네블럭으로 모이게 될 판이라고. 이쪽 동네 일은 아니지만, 우리 쪽도 한 놈 튀었다며? 내부 회선에도 차질이 생긴 모양이야.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게 생겼어.”


“’상부’에서 드디어 하루하루 재촉하기 시작했어. 전화기가 터지거나 우리 측 교환원이 1분마다 회선을 새로 연결하다가 과로 사를 하거나 사직서를 던지게 생겼다고.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당 내에서 핵탄두와 우리 대가리 중 누구 것이 먼저 터질 지 내기까지 했다고 해.”

 

둘은 한참이나 우울한 표정을 한다. 그러다가 ‘1번’도 ‘2번’도 다시 자기 할 것을 계속한다. : 1번은 신문지 같은 것들을 스크랩하여 코르크 보드에 핀으로 꽂아두는 것을 마저 하고, ‘2번’은 서로 물어 뜯느라 바쁜 도사견 중 누구의 대가리를 날리는 것이 청각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편안할 지 고민하는 것을 계속한다.

 

“타깃들은 어때?”


“한 놈의 다리는 여전히 가망이 없어. ‘운송’에 약간의 차질이 될 듯 해. 이동 계획을 수정해야겠어. 그래도 걱정 마. 둘 다 대가리 쪽은 희망적이지. 신선하게, 펄떡펄떡!”


“FBI나 CIA의 감시망은?”


“그게 또 복잡해졌어. 말했다시피, 아직 경찰 병력의 다수 투입을 고려 중인 단계이고. CIA야 다행히 다른 쪽으로 잠깐 시선을 돌린 것 같지만, 이곳 경찰청장과 FBI 대가리가 친한 모양이야. 미리 심어둔 우리 측 인원들의 말에 따르면 허구한 날 그쪽을 감시한다고 하더군. 특별히 말을 넣은 거겠지. 하지만 못할 일도 아니야. 도박을 좀 해야겠지만.”


“어떻게?”


“그 왜, 이번에 중국 놈들끼리-엄밀히 말해서 중국 놈과 도통 뭔지 모르겠는 놈이지-싸움이 붙었잖아. 먹고 살 만하니 별의 별 곳에서 행패를 부려대는 모양인데, 경찰 병력과 FBI 놈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집중될 때가 생길 거야. 우리로써는 그걸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거지. CIA야 다른 동네 놈들이 알아서 할 거고. 우리는 때만 기다리다가 적당한 때에 치고 빠지면 그만이야. 다만 전개가 희망적이기를 바라야지.”


“그러니까, 네 말은―”


모든 걸 확신할 순 없어, 이 친구야. 그렇지만 상황이란 대하는 것에 따라 뒤집어지기 마련이지. 어차피 꼬이고 좀 글러먹은 거 잠깐 남 좋은 짓을 해보자, 이거지-정확히는 정신 나간 짓이지만-. 여기서 실패를 해 봤자 뭐가 더 나빠지겠어? 우리 모가지는 어차피 늘 달랑거리던 참이었다고. 그러니까 한 번 거나하게 해보자. 마침 때도 좋잖아. 분탕질은 때를 맞춰야 효과적인 거야. 아주 이 거리에 불을 질러 보자고. 우리의 체류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이미 꼬리가 밟혔을 수도 있지만, 저쪽에서 별 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건 나름대로 희보야. 차라리 이쪽 저쪽 기웃거리다가 푼돈도 좀 굴리면서 판을 더 크게 불려버리자. 다들 눈 뒤집어 졌을 때 타깃을 들고 튀면 되니까. 왜, 그런 말 있잖아.”

 

고심 끝에 쏴 버릴 쪽을 고른 ‘2번’이 총의 장전 상태를 확인하며 말한다.

“요정 대모였나? 염병, 이 빌어먹을 나라는 표현도 지랄 맞아.”

 

 

***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길게 끌린다. 규모가 큰 데다 자본이 몸집을 불려가고, 그만큼 발전하는 도시인 아네블럭의 항구는 언제나 사람들로 들끓는다. 


 왕래가 바쁜 배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기다리는 배를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벌써 조직에서 몇 년째 해 온 일이다. 그는 이번 거래가 제법 중요하다고 여긴다. 특별히 준비한 것들이 몇 개 있다. 마침 새로운 거래선도 뚫은 데다가, 함께 개척한 시장도 기회가 무성하다. 선적되어 오는 중인 수입품들 안에 숨겨진 것들은 꽤나 값지고 혹은 값지게 될 것들이다. 


수익은 삶을 순환시키고 순환된 삶은 새로운 환경을 낳게 될 것이다. 동쪽은 확실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극히 일부 집단에게나 견고한 시스템의 그늘 대신 그의 동포들은 사적 영역에 편입됨으로써 제대로 된 보호를 받게 될 수 있게 될 것이다. 혹은 그 비슷한 상황이라도 되거나.

 

 그의 부모는 이곳이 기회의 땅이란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들 역시 방법 중 하나를 택했을 뿐이었다. 결과가 썩 시원찮았을 뿐이지. 다른 길을 택했다고 해도 달라질 건 딱히 없었을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어차피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다. 남은 것은 적응의 문제다.
 

 그는 적응이란 것에 자신이 있었다. 방법과 선택만 잘 하면 그만이었다. 그 단순한 것을 위해 복잡한 것들을 좀 거치긴 해야 하지만 어차피 모든 삶이, 사업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이 역시 조금 특이할 뿐인 사업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위험은 늘 어디에나 있었다. 확신은 위험했지만 똑똑한 접근과 새로운 게임을 찾아내는 건 중요했다. 말했다시피, 이 모든 건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여기서 말썽이 더 일어난다면, 그땐 우리와의 충돌 역시 감수해야 할 거다.”

롤리 베켓. FBI로 최근 다시 복직했고 그 전엔 전쟁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그는 눈을 조금 움직여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흘깃 쳐다보다가, 다시 조금씩 가까워지는 배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이건 마지막 경고야, 샤오.”

 

 샤오의 곁에 있던 행동단원 몇몇이 총을 장전한다. 샤오는 그만 두라고 한 손을 올렸다가 내린다. 베켓 쪽에서도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두 사람이 낼 법한 소리다. 늘 그렇듯 그 조용한 새 파트너와 함께 온 모양이다. 본래는 그 파트너의 자리에 있었을, 롤리의 친형인 얀시 베켓 역시 FBI의 요원이었지만 최근 순직했다. 십 년 전 서쪽 구역 마피아들의 서열 정리에 휘말려 든 탓이었다. 

 그는, 샤오 리웬은 소리 없이 픽 웃고 만다. 애송이들. 샤오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서 샤오를 주시하기 보다는 차라리 서쪽 거리의 그 ‘미친놈’이나 주시하는 편이 더 심리적으로 나았을 텐데 말이다. 이 모든 난리와 싸움, 사건의 원인 모두 서쪽의 미친놈에게 있지 않던가? 얀시 베켓을 그렇게 만든 것도 그 놈의 짓이고. 무엇이 앞이고 뒤인지 모를 바엔 차라리 근처 타운의 나치 놈들이나 구경하는 게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중국어를 배워오도록 해, 베켓 요원.”

 샤오는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가며, 베켓의 새 파트너인 모리 마코에게 시선을 잠깐 주었다가 곧 정면을 바라본다.

“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언어가 우선 아니겠어?”

멀리서 뱃고동소리가 더욱 가까워진다. 항구에 사람들이 모였는지 소란이 부유한다. 곧, 이 거리에는 저것보다 더 큰 소음이 날 것이다. 

생을 건 소음이.

***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아네블럭 시 외곽 구석 어느 골목. 폐 건물이 많고, 마피아들이 녹슨 창고를 불법적으로 사용한다는 소문이 무성한 지역이다. 있는 것이라곤 거리의 부랑자나 피폐한 삶에서 막 도망쳐 나온 초짜, 설탕 따위를 풍선에 처박아서 남 몰래 거래하는 몇몇 갱뿐이다.

 ‘놈’이 눈을 뜬 곳도 그 골목이었는데, 그 더러운 곳에서도 가장 위치 선정이 형편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이, 쓰레기 운반박스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중인 쓰레기들이었으니. 


 ‘놈’의 머리는, 잔뜩 취한 채 몇 대 배트로 얻어맞은 것처럼 끔찍하게 아픈 데다 어지럽기까지 했고 눈은 침침해서 사물 구분이 잘 안 됐다. 감각은 몽롱했으나 미약한 한기 정도는 느낄 수 있는 상태다. 


 ‘놈’은 노상에 던져진 것처럼 누워있다. 혹은 정신 나간 운전자의 차에 치인 사고 피해자처럼 사지를 제대로 못 가누는 것처럼 누워있다. 초점 잃은 눈으로 간신히 사위를 살핀 ‘놈’은 몇 번의 시도 끝에 몸을 일으키기까지는 성공한다. 멀리서 경찰차 소리인지 뭔지 모를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그 사이로 스윙인지 재즈인지 모를 것이 섞인다. ‘아닌가, 저게 그 ‘로큰롤’이던가? 누구 노래였더라?’ ‘놈’은 고민한다. 루이스 조단? 듀크 엘링턴? 제대로 아는 이름인지도 헷갈리는 명사 몇 개가 머릿속을 느릿느릿 기어간다. ‘놈’은 고민을 멈추고 다시 주변을 돌아본다. 눈이 벌건 생쥐 한 마리가 쓰레기 봉투를 물어 뜯다가 ‘놈’과 시선이 마주친다. 생쥐 놈이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멀찍이 도망을 간다. 

 “이봐요!”

 뒤에서 누군가 소리치듯 ‘놈’을 부른다. ‘놈’은 뒤를 돌아본다. “괜찮아요?” 덩치가 큰 낯선 이가 비척비척 걸어온다. 남부 식 사투리가 강하게 섞인 억양이다. “어디 다쳤어요? 경찰 불러드릴까? 부른다고 여기까지 오기나 할 지 모르겠지만!” 목청이 큰 탓에 골목 곳곳이 울리는 것만 같다. ‘놈’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한다. 남은 힘을 쥐어 짜 ‘놈’이 일어난다. 인상적인 점은 그 친절한 ‘사마리아인’의 반응이다. 

“이, 이런 망할!”

친절한 사람은 비명을 지른다. ‘놈’은 괜찮으냐고 묻기 위해 입을 벌린다. 

그리고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낀다. 그것도 아주 많이.

***

 발전을 거듭하는 아네블럭 시의 외곽, 어느 외진 골목에서 의문스런 포효를 들었다는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뉴스에 따르면 닷새 동안의 피해자는,

“벌써 일곱이야.”

아네블럭의 범죄 수사과 형사인 척 한센이 보고서를 책상 위로 던지며 말한다. “벌써 일곱이라고, 빌어먹을 FBI 양반! 이게 무슨 일일까, 응? 일곱 피해자 모두가 다 ‘어떤 커다란 것’에게 찢어발겨져서 염병할 조각이 났다고 하네?” 한센이 그를 바라보는 롤리 베켓에게 반쯤 조롱조로 말한다. “적당히 맞춰주겠다고 했지. 빌어먹을 뒷짐이나 지고 예쁜 양복이나 다듬으면서 서성거리면 됐을 것을.” 베켓의 파트너 마코 모리가 몇 번을 말렸음에도 결국 롤리 베켓이 나서서 맞선다.

“수사권 싸움을 건 쪽은 ABPD인 걸 까먹은 모양인데?”


“빌어먹을 수사권은 원래부터 우리에게 있었어! 나서지 말고 저 망할 놈의 독일인 자식들이나 감상하다 꺼졌으면 이렇게 끌리지도 않았겠지!”


“둘 다 진정 좀 해요.”


“아, 베켓 요원. 여자친구 관리나 좀 하지?”

베켓이 한센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른다. “마코에게 사과해!” 형사 몇이 달려와 뜯어 말리고, 마코 모리와 몇몇 경관 까지 합류해서야 그 둘은 떨어진다. “둘 다 진정하라고요!” 모리의 발언에 화가 짙게 묻어 나온다. 한 숨을 한 번 내쉰 그는, 다시 특유의 침착한 어조를 겨우 유지하며 말을 잇는다.

“우리끼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 마을에 있는 사건만 해도 자그마치 세 건이에요. 독일인 교수 두 명 주시, 마피아들의 전면전, 그리고 이번 연쇄 살인 사건까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조정할 수 있을 수준이었죠. 하지만 이제 변했어요. 모든 것이요.”

“아네블럭 시에 적국의 끄나풀들이 잠입했다는 건 이미 회선을 통해 한 바퀴 돌았으니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CIA측의 첩보에 따르면, 그들이 노리는 건 두 독일인 박사들이에요. 마피아들? 검은 시장에서 조용히 놀던 사람들이 갑자기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고 있죠. 심각한 부상자는 물론이고 사상자도 많아요. 게다가 벌써 요한슨 판사는 살해당했어요. 적당히 봐주고 체면 차리던 날은 끝났단 말입니다. 강력 범죄 사건도 그래요. 연쇄 살인사건이 터지기에 지금의 아네블럭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곳이었어요. 십 년 전 서쪽 마피아들의 서열 싸움 이후, 범죄 율은 타 도시에 비해 거의 바닥에 가까워졌고, 있어봤자 경범죄 정도였죠. 이곳은 비교적 조용한 도시 중 하나였어요―성장 중인 곳 치고는. 하지만 벌써 싸이코 살인마 하나가 거리를 활보하게 됐군요. 우리는 다음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놈을 잡아야 해요. 결론은,”

모리는 베켓과 한센을 차례로 바라본다. 

“결론은 이 모든 사건을 한 부처가 감당하기에는 인력도 모자라고, 시간도 없단 뜻이에요. 우리끼리 수사권 싸움을 할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특히 예고된 마피아 전쟁과 연쇄 살인 사건 때문에, 주 경찰은 물론이고 카운티 보안관들까지 투입 여부를 고려 중입니다. 아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투입이 되겠죠. 그럼 수사권 문제와 경쟁은 더욱 심해질 거에요. 사건 해결은 더뎌질 거고, 그만큼의 희생자와 피해가 속출하겠죠. 도시가 무너질 수도 있어요. 이번 사건들은 아네블럭이 한 번에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차라리 그들이 오기 전에 우리끼리 어느 정도 사건을 정리한 후 적당한 시점에 인도와 권한을 나누는 게 최선이에요. 공적 보다는 사람 목숨과 사회 안정이 우선이니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좌중의 모두가 침묵한다. “우리의 공적이나 명예보다 사람, 그 자체가 먼저에요.” 모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벌컥 열린다. 입을 열려던 한센은 다시 입을 닫고, 베켓은 숨이 턱까지 차오른 ABPD 소속 순경을 바라본다.

“하, 한센 형사님!”


“뭔가.”


“크, 큰일 났습니다!”


“그러니까 그 염병할 놈의 큰일이 뭔데?”

“연쇄 살인이, 연쇄 살인이―” 뛰어들어온 순경은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다가, 말한다.

“똑 같은 방법으로, 동시에 다섯 건 일어났슴다! 서쪽 외곽 지역에 하나, 동쪽 외곽 지역에 둘, 시내 중심가에 하나, 항만 지역에 하나, 이렇게요! 현재 대부분의 경찰들이 각각 추격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혀, 혀, 현재 요, 용의자는……용의자는 총 다섯 명 입니다!”

 

<Love In a Minor Key>
맹렬하게 일을 수행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잠깐 멈춰서 이 모든 일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보통 계획된 때도 아니고, 바라던 때도 아닌 때에 상념처럼 젖어 든다.

“이게 맞는 일일까?”


“해보고 싶은 일 아니었어?”


“그건……난…….”


“뉴트, 뉴트. 내 사랑하는 친구. 조금 더 솔직해져 봐.”


“그래, 빌어먹을! 나는 이 염병할 짓거리에 대해 궁금했어. 어쩌면 해, 해보고 싶었던 걸 지도 몰라. 한때는 진짜 결과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지. 내 눈으로 보는 것을 원했어. 하지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앨리스, 기대나 환상은 현실과 달라. 구분은 중요한 일이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지.”


“아, 너 이제 슬슬 네 지루한 애인 닮아간다, 뉴트.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이건 오―올바른 일이 아니야, 앨리스.”

뉴튼 가이즐러가 자신 없게 덧붙인다. 앨리스는 코웃음을 친다. 그는 눈 앞의 개체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놈들은 다들 우리에 갇혀 있고 사슬 따위로 묶여 있는데, 저마다 괴물이라고 불러도 무색할 기괴한 몸을 갖고 있다. 공통적으로 눈이 툭 튀어나오고, 끈적한 침을 뚝뚝 잇새로 흘리며, 배열이라고는 까먹어버렸는지 잇몸 여기저기에서 끝이 톱니처럼 된 수 많은 치아들이-그걸 인간의 ‘치아’라고 부를 수 있다면-튀어나와있으며, 다리와 팔 쪽에 비정상적으로 근육이 부풀어있다. 손발톱은 들려있거나 빠져있었고 그 자리에 짐승의 것 같은 발톱이 튀어나와있다. 몇몇 개체는 눈이 뒤통수에 달렸거나 입이나 주둥이 몇 개가 목이나 팔뚝에 달려있기도 하다. 축 늘어진 다섯 개의 혀가 개처럼 헐떡거리는 놈도 있고, 아예 사지가 뒤틀려서 기괴하게 기어 다니는 놈도 있다.

 “모든 언어는 말이야, 상황과 관계에 따라 정립 되는 거야. 대의란 놈은 대어만큼 낚기 어려운 자식이라서 몇 가지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적립해야 얻을 수 있지. 그 조건도 까다롭고, 운도 조금 붙어야 해.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가이즐러 박사. 순조롭게 가고 있지 않아?”

“너는 거리에서 총질하는 자식들을 없애고 싶다고 말했어. 나 역시 그랬고.” 홱 몸을 돌려 가이즐러 가까이 간 앨리스가 히죽거린다. “나는 이 깡패 자식들을 엿 먹이기 위한 계획을 적어도 십 년간 생각해왔어! 그리고 너는 망할 놈의 마피아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서,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했지. 우리의 방법으로, 너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게 바로 빚을 갚는 길이야! 연극조로 덧붙인 앨리스가 킬킬 웃으며 묶인 우리 가까이 다가간다. 무리들이 흥분해서 날카롭게 짖거나 신음하는 듯한 소리가 낡은 창고를 울린다.

 “실험이야 대충 끝났어. 이 정도의 생산 속도라면 더 많은 놈들을 풀 수 있을 거야―그러니까, 마피아 놈들의 본거지에 말이야. 벌써 서쪽 외곽과 동쪽 외곽에도 몇 놈 풀었잖아. 결과는 괜찮았고.”


 “이런 방법뿐일까?”


 “그럼 네가 저 미친 놈들을 뭐로 상대할 건데? 정신차려, 이 친구야. 상대는 미친 듯이 달리는 기차 위에서 기관총을 갈겨댈 법한 놈들이라고. 잡초와 근육쟁이 놈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이렇게 한 번씩 싹 밟아주면 알아서 긴다는 거야. 당분간은 눈에 안 보이지.”

“그리고 이 멋진 일을 너와 내가, 우리가 같이 설계했잖아, 뉴트. 밤마다 개발도 함께했고-네 대학 실험실에게 추가적으로 감사를 해야겠어. 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제 결과가 코앞인데 그런 약한 소리나 해서 쓰겠어?”

“기억해. 이 모든 건 허먼 고틀립을 위해서 란 걸.” 앨리스가 미지근해진 맥주를 내밀며 웃는다. 가이즐러는 복잡한 얼굴을 하다가, 캔을 받는다. 그리고 반쯤 우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의 허먼을 위해.”

***

 “생각해봤는데, 그 자식 믿을 수 있는 거 맞아? 하는 말이 영 믿을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가장 기본적인 정보 조차 없잖아. 심지어 성별 마저…….”


 “생각 참 빨리도 한다.”

 ‘1번’이 불안하게 묻자, ‘2번’이 핀잔을 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상에 믿을 놈이란 게 있기나 하냐?” ‘2번’은 심드렁한 어조로 덧붙이고, 약간 떨리는 손으로 위스키 탄 커피를 들이킨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긴장을 덜어줄 술 한잔이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의 주체가 누군데?”


 “누구든.”


 “첫째, 우리는 우리만 신경 쓰면 그 뿐이야. 둘째, 놈들이 엿을 먹든 망하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셋째, 우리가 이딴 미친 짓을 하는 건 어디까지나 작전의 일부라는 걸 기억해. 그리고―”

똑똑. 누군가 차창을 두드린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것은 ‘2번’이었으므로, ‘2번’은 말을 끊고 창문을 조심스레 내린다. 우락부락한 중국인 한 명이 고갯짓을 한다. “물건은?” ‘2번’은 ‘1번’이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던 서류 가방을 건네 받아 보여준다.

 “빈 손으로 올 거였으면 연락 하지도 않았어.”

 그의 말에 중국인이 말한다. “좋아. 내려.” 둘이 내리자 멀리서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찰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둘은 그 특이한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 작전의 시작이다.

***

 “협상? 더는 유효한 선택지가 아냐.”

“그쪽이든 저쪽 미친놈이든, 어느 쪽에도 협력하거나 협상할 생각 없어. 남은 건 충돌뿐이지.” 샤오 리웬이 말했을 때, 모리 마코는 모든 게 끝났음을 알 수 있다. “어차피 한 번은 올 파도였어. 도착이 빨랐을 뿐이지. 우리는 계속 대비와 계획을 해왔고. 이 마당에, 요원이 쭉 우리에게 신경을 쓰는 게 좋은 건 아니겠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아.” 샤오의 말에 모리는 복잡함을 애써 억누르려 노력한다.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잡는 방법 밖에는 없다. 밖에는 정체 불명의 살인마 괴물들이 기어 다니는 때에 마피아 전쟁까지 터지면 아네블럭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이 뒤집어질 것이다. 그건 경제 및 정치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올 것이고, 호황 속에 헤엄치던 국민들의 불안은 사회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국제사회에서는 괴물의 출현에 대한 질타와 의심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냉전으로 인해 심각해진 외교 전은 더욱 질 낮은 비난 전으로 격하될 수도 있다. 그것들이 중첩되고 축적이 되면, 결국 이 사건들의 끝에 각국의 대통령들은 불편한 기분으로 핵 단추를 누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건은 복잡하게 연결되기 마련이고, 사고의 심각성은 사건의 연결 수에 따라 심화된다. 어차피 모두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세상에 그런 확신은 있을 수가 없지만, 모리는 내심 그래도 모두가 괜찮은 결말을 상상했음을 인정했다.

 “나는 지켜야 할 업이 있어.”


 “범죄는 업이 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시스템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남은 건 범죄를 하느냐 혹은 그 범죄에 침묵하느냐 둘 중 하나야. 최소한 자기 자신은 지키려면 말이지. 그리고 나는, 우리 동포들의 최후의 방어선이야.”


 “조금씩 나아지고 있잖아요.”


 “최소한 당신은 그 말을 하지 않길 바랐어, 모리 마코.”

 둘 중 언성을 높이는 쪽도, 얼굴을 붉히는 쪽도 없다. 그렇지만 둘은 마주 앉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란 것을 알고 있다.

 “당신들이 최근 골머리를 썩고 있는 괴물 사건이라면 나도 알고 있어. 우리 구역도 당했지. 조직원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보호하던 동포들도 몇 명 당했어. 내가 멀쩡히 있는, 내 구역에서. 이건 좌시할 수 없는 일이야. 게다가 괴물의 출처가 ‘그 놈’이라니, 배후와 내막을 떠나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지. 이번 사건은 그쪽이 한 발 늦었어, 모리 수사관. 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 해.“


 “죄 없는 다수가 휘말릴 겁니다.”


 “모든 일에는 그만큼의 비용이 따르지. 이건 내 평생의 계획이기도 하지만 현재 진행형인 사업이야. 잡아가려면 날 지금 체포해야 할 거야, 모리 요원.”
    

 

모리는 일어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체포하고 싶지만, 오늘은 그럴 명분이나 증거를 들고 찾아온 게 아니다. 최대한 피를 덜 흘리는 쪽으로 마무리를 해 보려고 온 것이다. 보아하니 차우 쪽은 들어먹지를 않고-게다가 투약자를 괴물로 만드는, 이상한 물질인지 약물인지의 최초 배포자 혐의도 있고-, 그나마 기대한 것은 설득의 여지가 있던 샤오 쪽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리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모양이다. “우리에게 더는 할 말이 없을 것 같군요.” “동감이야.”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본다. 모리는 뒤를 돌아 나간다. 샤오는 모리에게 있어 범죄자지만, 정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리가 감시 차 쭉 지켜봐 왔던 샤오는 그, 한니발 차우와는 다르다. 

 “몸 조심하십시오.”


 “범죄자를 걱정 하는 거야, 수사관? 네 파트너는 내가 아니라 베켓일 텐데.”


 “압니다.”

 “다신 할 수 없는 말 일 테니까요, 리웬.” 

***

 허먼 고틀립은 FBI에게 받아온 사본들―사건 경위서와 부검 보고서 따위를 훑어본다. 이미 닳도록 읽은 자료들이었지만, 사실 관계를 밝히거나 수사를 위한 분석에서 자료 복습은 수 백 번을 해도 부족하지 않은 행위다. 


 피해자 및 ‘가해자’들의 생산 패턴은 단순하다. 사실 고틀립이 없었어도 누군가는 밝혀냈을 패턴이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 하나 당 대응되는 피해자 수는 비례한다. 가해자가 하나면, 피해자 역시 한 명이 된다. 그리고 이 ‘세트’의 증가에는 일종의 규칙 양상이 존재한다. : 처음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세트가 하나, 그 다음도 하나, 그러다가 갑자기 두 쌍으로 늘고, 그 다음은 세 쌍, 다음은 다섯 쌍……. FBI와 ABPD가 뒤늦게 밝혀낸 ‘약물’과 ‘가해자’의 진실에 대한 보고서를 마쳤을 때는 이미 피해자와 가해자가 열 세 쌍이 되었고, 배후에는 한니발 차우가 있다는 소문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말이 들렸다. 


 패턴은 피보나치 수를 정확하게 따르고 있다. 지극히 초보적인 설계라고, 보고서를 건네주던 연방 요원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아니면 ‘어머니 지구’의 특정 경향에 대한 변태적인 취향이 있겠죠. 아무려나, 잡히기만 하면 원이 없겠어요, 고틀립 박사―아, 아니, 교수님. 집에 가서 잠 좀 자게.”

 “허먼. 두 가지 할 말이 있어. 먼저, 냉장고에 야채가 떨어졌어. 그리고 누군가 내 결과를 이용했어.”

고틀립이 프로파일링의 자문위원으로 임시 발탁된 것과 동시에, 뉴튼 가이즐러는 기괴한 ‘가해자’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부검 자문위원으로 임시 발탁되었다. 전쟁이 끝 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독일인, 그것도 한때 나치에 부역했던-자의는 아니었지만-자들의 참여에는 당연히 백안시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고틀립은 자신의 일에 충실했다. 그건 가이즐러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이야?”


“야채가 무슨 뜻이냐고?”


“이상한 소리 마, 뉴트. 네 결과를 이용했다니?”


“이 ‘가해자들’ 말이야. 지금에 와서는 피해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기도 알고 있잖아. 자기도 기억하고 있잖아! 저 끔찍한 것들의 모양새…….”


“한니발 차우가 나치의 프로젝트 문서를 빼돌렸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허먼은 부디 아니길 바란다는 듯 눈을 기괴하게 찡그리며 덧붙인다. 예상은 한 부분이긴 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허먼 고틀립은 알고 있었다. 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의 언어조차 믿는 사람의 연구 결과들과 비슷했다는 걸. 다만 답지 않게 감정이 앞섰기에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이었지. 그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진실의 낯을 더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희박한 만약에 무엇이든 걸고 싶다고 생각한다. 허먼 고틀립은 뉴튼 가이즐러가 농담이었다고 말하길 바란다.

“안 될 게 뭐가 있어, 허먼? 세상엔 미친 놈들이 많아. 게다가 한 때 우리도 그 미친놈들 행렬에 껴 있었잖아. 미국이라고 다를 게 있겠어?”


“대, 대대, 대체 어디서 네 연구가 샌 거야?”


“내가 그걸 알았으면 펜테코스트 옆에서 멋진 첩보 활극을 찍고 있지 않았을까, 자기야? 물론 난 그런 거 없어도 빌어먹게 천재적인 과학자지만!”


“방법은? 이 사태를 모른 척 할 수 없어, 뉴트. 그래서는 안 돼. 이건 책임에 대한 부분이야. 우리가 가만히 있는 건 옳지 않아! 게다가 이건, 그러니까 네가 마지막 연구에서는 전염성까지 관찰됐다고 했잖아! 아직까진 전염으로 변형된 개체가 없는 거 같긴 하지만, 곧 나타날 지도 몰라. 그럼 이 도시는 끝장이야. 살해당하거나 다들 괴물이 될 거라고.”


“무슨 방법? 저 놈들 막을 방법? 당연히 있지. 총으로 급소를 쏴 버리면 돼! 간단하지?”


“총이 안 먹히는 개체가 있잖아!”


“우리가 보통 ‘급소’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예를 들면 머리 말이야-사실 더는 급소가 아니게 되었나 보지. 그래도 다른 데에 분명히 있을 거야. 기본 형태는 어쨌든 인간이고 이 자식들도, 사교하기엔 서먹하게 생기긴 했지만, 생명 활동은 하니까. 본래 형태에서 뭔가가 염병하게 변형이 되었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때 아닌 할로윈 놀음을 하고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급소가 없어졌을 리는 없어. 그냥 다른 데로 밀려나서 이동했거나 새 장식물에 가려졌을 뿐이겠지. 허먼, 내 연구가 제대로 먹힌 거라면, 이 약물의 경우 각 개체별유전자 정보에 따라 랜덤으로 국부를 발달시키거나 퇴화시켜. 혹은 말도 안 되는 기관을 생성해내지. 특히 변화는 조직을 ‘찢어’ 버리는 것처럼 시작되는데, 피부층위로 뭐가 더 덧씌워진 놈들이 나타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총알을 튕겨내는 친구들 말이야.


 자기야, 이 연구 말이야, 나는 초반에 손을 뗐고-그렇다고 해도 내 천재적인 머리로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다음 진행 상황이나 모든 상황을 다 알지는 못해. 심지어 몇 가지는 개선까지 됐다고. 아무것도 없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분석과 예측할 뿐이야. 그리고 그 예측의 정확도는-축하하도록 해, FBI-98.2%고!”

고틀립은 가이즐러를 한참이고 바라본다. 가이즐러는 눈알을 한 바퀴 굴리고는 보던 보고서를 집어 치우라는 듯이 탁자 위로 던져버린다. 그는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에서는 최근 뜨고 있는 락앤롤 밴드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연일 말도 안 되는 연쇄 살인 사건과 마피아들에 대한 보도로 다른 소식은 나올 겨를도 없는 지역 뉴스가 아닌, 문화 관련 채널을 켠 것을 보면 가이즐러는 일부러 지역 채널을 피한 것이다.

“세상엔 우리를 위한 자리가 전혀 없나 봐, 허먼. 나는 그래도 막으려고 했었어. 그냥 좀……좀 잘 해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아닌 너를 위해서.”
“뉴트.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고생할 걸 알고 있었잖아. 이런 건 사실 생각해 보지도 않았지만.”

고틀립이 달래듯이 말한다. 가이즐러는 잠깐 바닥을 바라보다가 다시 씩 웃는다.

“하지만 널 계속 미친 상황 속에 두진 않을 거야. 약속했잖아. 탈출만 하면 될 일이라고. 너는 늘 그랬지. 내가 하는 말마다 안 될 일이라고. 두고 봐. 내 약속은 틀림 없어, 자기야.”

“여전히 몇 가지는 부당하고, 몇 가지는 마음에 안 차겠지. 하지만 우리는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 때 내가―” 

그때, 멀리서 큰 소음이 들린다. 고틀립도 가이즐러도 둘 다 말을 멈춘 채 굳어있다. “무, 무무, 무슨 소리야?” 고틀립이 속삭인다. 그 뒤를 이어 길게 끌리는 울음소리도 들린다. 가이즐러는 눈을 굴리다가 던져뒀던 보고서 뭉치를 주워 들며 말한다. 

“이 사건 말이야. 그래, 네 말대로 우리, 아니, 나한테 어느 정도 책임이 있어. 네가 나라면, 너는 가장 옳은 행동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말해봐.”


“뜬금 없기는. 어쨌든 모두가 괜찮게 되는 방법을 찾는 거겠지. 이 개체들을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건-어쩌면 유일하게-너잖아, 뉴트.”

“그렇지?” 가이즐러는 고틀립을 향해 씩 웃는다.

“갈 곳이 생각났어, 허먼. 너는 여기 있어.”


“어디 가는데?”

뉴튼이 종이 뭉치들을 가방에 쑤셔 박으며 급하게 말한다.

“어쨌든 모두가 괜찮게 되는 쪽!”

<Pull My Trigger>
상황에 대한 반응이나 생각은 제 각각이다. 보통은 딱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몇몇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몇몇은 아니다.

***

 뉴튼 가이즐러는 잘 해보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잘 안되었지만 그는 아직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이즐러는 진심으로 책임감에 대한 무게를 느끼고 있다.

 허먼 고틀립이 듣는다면 개소리 말라고 하겠지만, 언어의 무게와 그 실체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이어져있고, 거기서 작용하는 언어는 지극히 상대적인 속성을 띠게 된다. 누군가는 그것에 사로잡혀 방향을 잃거나, 그 놈에게 도전하거나, 오히려 놈을 이용해서 의도한 대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혹은 어쩔 줄 몰라서 가만히 있거나.
 
 결국에는 핵심의 문제다.

내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거나 행동하는 지를 정하면 된다. 가이즐러에게는 나름대로의 방침과 믿음도 있다. 그의 원동력은 오로지 고틀립 뿐이다. 앨리스의 계획에 완전히 관심을 끈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가이즐러는 스스로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모든 것을 돌이키고자 마음먹는다.

 가이즐러는 다시 되새긴다. 결국 책임과 신뢰의 문제다. 그는 고틀립과의 관계를 강력히 하거나 지금을 지키고 싶다. 이것은 뉴튼 가이즐러만의 사랑 방식이다. 책임을 지고, 허먼이 무의미하다고 강조하는 언어에 힘을 실어주어서, 그들이 갖는 관계의 무게를 가중시키면서 관계의 작용과 유지 역시 견고히 해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저 정신 나간 마피아들을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하지?’ 떠오른 방법은 많다. 대체적으로-특히 고틀립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듣는다면-미쳤냐는 소리가 나올 법한 것들이어서 그렇지. 가이즐러는 고민한다.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행동 하나를 실행한다.

“택시! 이봐요!”

***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샤오 리웬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한니발 차우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그 ‘언제’가 이토록 빠르게 올 줄은 몰랐다. 


 한니발 차우는 위협이다. 샤오가 원하는 것은 시스템에 차별 받거나 사회에 제대로 수용되지 못한 동포들의 보호다. 샤오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나름대로의 다짐과 책임에 대한 계획도 수립해두었다. 그 진행에 있어 차우는 장애물이다. 그는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하며 돈 외에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 백인이면서 동양인들의 사회 한 켠을 쥐고 있고, 일 처리가 남달라서 판사를 죽이고서도 기소되거나 법망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그는 동쪽을 노리고 있다.

 한 지역을 점거한 두 개의 범죄조직에게는 대부분 대립과 경쟁이 과업으로 남기 마련이다. 여전히 삶을 전쟁처럼 살아내는 사람들이 범죄에 몸을 담은 만큼, 그들이 ‘과업’에 임하는 방식은 치열하고 또한 비열하다. 샤오 역시 신사적이게 굴거나 법도를 따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택해야 한다. 벌써 조직 내 희생자 수가 만만치 않다. 장기전은 샤오에게 불리하다. 차우의 무기는 말도 안 되는 괴물-그래, 그 괴물 말이다. 도저히 지상에서 기어 다니는 것이라고는 말 못할 기괴한 생물체들-과 급증하는 개체의 증식이다. 운이 좋거나 제대로 조준하지 않는 이상 그것들을 죽일 급소를 찾는 것도 시원치 않다. FBI와 ABPD, 카운티 보안관들이나 주 경찰들이 투입되었다고 하지만 샤오에게 좋을 소식 보다는 각 부처의 희생자 수가 경쟁하듯 증가하고 있다. 

“보스.”

샤오가 눈만 들어 바라보자, 방에 들어온 조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그를 부른다. “찾아냈습니다.” 그는 주변과 문 밖을 한 번 더 확인하더니 샤오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약물’의 공급 루트요. 예상하신 곳 중 하나에 있었습니다.”


“차우의 동선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원체 미친 놈이라…….”


“놈이 어디로 새든 별 상관은 없어.”


“어떻게 할까요?”

샤오는 잠시 창 밖을 바라보다가 일어난다.

“생각이 있어. 차를 준비해.”

***

 앨리스는 한니발 차우가 마음에 든다. 놈은 이익에 민감하고 온갖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즉석에서 생각해내서, 다시 말도 안 되게 그것을 성공시킨다. 수완이 좋다고 한다면 좋은 놈이고, 수완이고 뭐고 그걸 또 해내는 미친 놈이라고 해도 맞는 수식어다. 

 모든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고, 앨리스는 스스로의 성공을 가늠해본다.

 모든 것을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앨리스는 이번만큼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네들을 부른 거야.” 앨리스는 당에서 ‘1번’과 ‘2번’으로 부르는 사내들을 한 번씩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적당한 판이 짜이면 부르려고 했어.”


“당에서도 조금 놀란 눈치던데.”


“아, 그러겠지. 자네들이 멍청한 짓만 골라가며 하지 않았다면 내가 올 필요도 없었겠지만.”

“자그마치 1년이 넘는 작업이었어.” 앨리스가 말한다. ‘1번’과 ‘2번’은 앨리스의 발언에 불편한 듯 굴었지만 그렇다고 무어라고 대꾸하지도 않는다.

“전화 교환원이 그만두기 전에 잘 풀려서 다행이야.”


“실 없는 소리 좀 하지마. 그보다 운송 경로를 재설정 했는데, 보겠나?”


“그만, 그만. 샴페인 먼저 따면 코르크에 뒤통수 따인다, 너희들? 아직은 두고 봐야 해. 완전히 매듭 지어지기 전까진 방심은 금물이야.”


“어차피 거의 다 된 거 아니야?”


“그야 보통 놈들이면 다 됐겠지.”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한 놈만 미쳤으면 좋겠는데, 대단하게 미친 놈이 두 놈이라서 어쩔 수 없어.”


“한니발 차우야 그렇고, 샤오 리웬은 그래도 비교적 멀쩡해 보이던데.”


“아니, 그 여자 말고.”

앨리스는 잠깐 말을 멈추고 창 밖을 본다. 그들은 한니발 차우의 미친 짓에 반만 협조 중이었는데, 그 미친 짓이 일어날 장소를 차우 외에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 본인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이제서야 깨달은 독일인.

“저기 저 택시 탄 놈.”

재건축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폐쇄된, 지역 대학 제 2 연구동 앞에 노란 택시 하나가 선다. 재건축 이야기야 5년 전부터 나왔지만 건설 공사에 비리가 밝혀져 아직까지도 유야무야 미뤄졌기 때문에 누가 올 리 없는 곳이 이곳 제 2 연구동이다. 그럼에도 택시가 섰다는 건, 1. 길을 완전히 잘못 들었거나 2. 도시를 오랫동안 떠나 있었거나 3.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뿐이다. 택시에서 사람이 내린다. 익숙한 머리통을 확인한 앨리스는 둘에게 눈짓한다. 

“우리는 좀 빠져 있자고. 팝콘 가져온 사람? 없어? 이런 재미없는 친구들 같으니.”

***

“그래, 좋아.”

택시에서 허겁지겁 내린 뉴튼 가이즐러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당초의 계획에서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을 이제서야 안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수습의 여지가 있다. 가이즐러는 막 뛰어들어가기 전에, 대학 연구동 밖에 있는 낡은 전화 박스를 발견한다. 그는 건물을 한 번, 전화 부스를 한 번 보다가 공중 전화기 쪽으로 직진한다. 동전을 몇 개 넣고 다이얼을 돌리자 교환원이 나타난다. 집으로 연결해달라고 하자 이어 허먼이 전화를 받는다.

“허먼, 자기야.”


-젠장, 뉴트. 어디야? 자네 어디로 간 거야?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그건 말하기 조금 곤란해. 밝힐 수 있는 건, 이 상황에 대해 나는 책임을 지러 왔고, 그 과정은 약간 위험할 거란 것뿐이야.”


-무슨 소리야. 이 비, 비비, 빌어먹을 자식. 당장 돌아오지 못해?


“허먼, 자네는 빈 껍데기 라고 하겠지만 나는 우리가 발전시켜갈 언어와 약속들을 믿어. 그건 우리가 우리여서 가능한 존재야.”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제발, 뉴트. 다치기 전에 그만 둬.


“그럴 수 없어. 나는 너와 약속을 지킬 거야. 그러니까, 그 전에 할 말이 있어.”


-……. 뭔데?


“자네가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지만, 사실 이 모든 걸 벌인 건 나였어. 정확히는 그 중 하나가 나야.”

고틀립은 대답이 없다. 쓰러지는 소리도, 쏟아지는 잔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 적어도 나 혼자는 말이야. 나는, 난……이걸 이용해서 오히려 마피아 전쟁이 소강되길 바랐어. 놈들 사이에 괴이한 생물체를 풀어놓고, 양 측 모두가 괴물에게 당해서 자멸하길 바랐어. 그래서 네가 더는 거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밤마다 악몽을 꾸지 않길 바랐다고. 그런데, 그런데 잘 안 됐어. 놈들이 괴물을 제어하기 시작했어. 방법을 알아내 버렸다고. 내가 속았어. 속은 거야. 깨달았을 땐 진행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었어. 이 상황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게 됐어. 그래서 잠깐 모른 척 했어. 더는 어찌 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렇지만 어떻게든 돌려 놓을 방법을 생각해냈어. 잘 될 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난 해낼 거야. 말했다시피, 이건 될 일이야, 허먼. 약속해.”

갑자기 뭔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당탕 하는 소음과 아마도 수화기가 떨어져서 어디에 부딪친 것 같은 소리가 이어서 들린다. 고틀립이 급하게 행동하면 들리는, 특유의 끌리는 걸음 소리도. “허먼?” 불길함을 느낀 가이즐러가 고틀립을 불렀지만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결국 전화가 끊긴다. 가이즐러는 한참 수화기를 바라보다가, 끊어버린다. 어쩔 수 없다. 가이즐러는 먼저 이 모든 ‘빌어먹을 짓’들에 맞서기로 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제대로 끝을 볼 거야. 난 록 스타가 될 거야, 자기야. 모든 걸 돌려놓을 거야.”

***

모리 마코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차우가 지역 대학으로 갔다고 합니다. 구 연구동 건물로요.” 


 “뒤늦게 가방 끈이라도 늘리려는 거야?” 

 ABPD 순경의 보고에 롤리 베켓이 화를 낸다. 그러나 모리는 이 모든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샤오와 대립 중인 차우가 왜 갑자기 대학으로 가려는 것인가? 설마, 하던 생각은 허먼 고틀립이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고 허겁지겁 뛰어온 때부터 진실로 작용한다. 

“모리 수사관!”


“고틀립 박사님.”


“당장, 다, 다다, 당장, 당장 나와 가, 같이 가야 해요!”


“무슨 일이죠?”

모리가 이쪽을 바라보는 수사관들과 경찰들을 물린다. 모리의 파트너인 롤리 베켓만이 가까이 다가온다. 

“이, 이이, 일이 커, 커커, 지기 전에 가, 가야 해요! 빨리요!”


“대체 뭔데 그럽니까?”

베켓이 나선다. 고틀립은 귀신 본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모르다가, 결심한 듯 말한다. 이번에는 제법 침착한 어조다.

“이 정신 나간 짓거리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 그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연쇄 살인 사건 말이에요! 혹시 한니발 차우가 어디에 있는 줄 알 수 있습니까?”

베켓과 모리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본다. “이런 염병.”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베켓이었고, 차로 뛰어가는 것은 모리다. 베켓은 허먼에게 고갯짓한다.

“이봐, 거기! ‘대장님’ 불러. 염병할 주 경찰이든 시 경찰이든 데려오고! 우리 먼저 갑시다, 박사 양반. 시간이 없어요. 가면서 이 염병할 사건들이 뭔지, 다시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보고서에 온갖 미친 소리를 써야 할 것 같으니까.”

***

한니발 차우가 뉴튼 가이즐러를 마주친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약물 공급자’에게 공동 연구자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 차우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고-“뭐 하는 놈인데?” “있어, 동네 미친놈 하나.” “그게 끝이야?” “걔보단 약이 더 매력적이지 않아?” “그건 그렇지.”-, 따라서 웬 어중간한 샌님같이 생긴 놈이 폐 건물을 쏘다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놈이 바로 그 ‘동네 미친놈’인 걸 직감했다.

“흥미로운 결과야.”

차우가 총구를 겨누며 말한다. 또 다른 개발자는 걸음을 멈춘다. 녹색 눈에 복잡한 감정이 서린다. 차우는 그것이 대체적으로 불길함과 겁에 속하는 종류임을 알고 있다. 

“매력적인 물건이지. 구매자가 줄을 섰어. 시기도 잘 맞았거든. 전쟁, 얼마나 멋진 단어야! 한 번 당겨지면 떼돈이 들어오지. 이 나라가 그걸 증명했어.”


“이건, 이래서는 안 돼!”


“안 돼 같은 소리 하네. 헛소리 그만 하기로 하지. 나는 사업이 좀 바쁜 사람이어서. 말이야.”


“유감이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인데.”

다른 목소리다. 차우는 입 끝을 당겨 웃는다. “샤오 리웬. 뒤에 있는 그 쭉정이는 뭐야? 새 액세서리인가?” 샤오는 차우를 향한 총구를 내리지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가이즐러에게서 딱 세 걸음 정도가 남았을 때, 샤오는 멈춘다.

“서쪽의 미친놈.”


“동쪽의 애송이.”


“우린 할 말이 있을 텐데? 넌 내 평생의 업을 망치려고 들었어.”


“그래? 난 생각이 다른데.”

차우가 방아쇠를 당긴다. 샤오 역시 마찬가지다. 복도에 총성이 울린다. “아, 안 돼!” 허먼 고틀립은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뉴튼 가이즐러는…….

***

 ‘2번’은 모든 것을 후회하고 있다. 전략 검토를 제대로 했어야 했다. 그는 머리통이 날아간 ‘1번’의 시신을 말끄러미 바라본 채 양 손을 올리고 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봐도 도통 이 빌어먹을 상황을 전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게 가만히 있었어야지, 동포.”

앨리스가 말한다. ‘2번’은 자물쇠가 풀린 채 텅 빈 우리로 향해 걸어간다. 방금 전까지 괴물들이 웅크리고 있던 곳이다. 비위생적인 점막 같은 것이 구석에 고여있다. ‘관짝 치고 영 취향에 안 맞는데.’ 등 뒤에서 앨리스의 총구가 불편하게 그의 허리를 찌르고 있다.

“대체 뭘 할 셈이야?”


“말해 줄 의무가 있어?”


“최대한 덜 억울하게 죽으면, 사후 상황이 생각보다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거 안 됐군.”

앨리스가 철창 문을 닫으며 웃는다.

“구천 좀 바쁘게 떠돌아다니게 생겼어.”

‘2번’은 머리에게 미리 안녕을 고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렇지만 수습할 방법은 영원히 없다.

***

 롤리 베켓은 총성에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세 번째 괴물이 우여곡절 끝에 총을 맞고 죽자마자 한 행동이다. “다들 정지.” 마지막 남은 세 번째 괴물의 급소를 날려버린 모리 마코가 베켓을 바라본다. 갑자기 출현한 괴물 탓에 한 바탕 한 그들은 조금 지켜있었지만 전진을 멈출 수는 없다. 베켓은 모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 “샤오는 괜찮을 거야. 그 여자는 자기 손해 볼 짓 절대 안 하니까. 거기다가, 가능성을 두긴 싫지만 차우 역시도.” 일이 복잡해졌어, 덧붙이는 그에게 모리는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피해는 최소한으로, 일은 확실하게.” 베켓이 고개를 끄덕인다. 

“흩어지자. 한 번에 덮쳐야 해.”

그 순간, 끔찍한 포효 소리가 들린다. “젠장, 더 있어?” 등 뒤에서 수사관 하나가 볼멘소리를 낸다. 모리가 베켓의 팔을 잡는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들었지?” 베켓은 욕설을 뱉는다. 원래도 복잡한 일이 더 어렵게 돌아간다.

“염병, 박사는 어디로 간 거야?”
 


***

 허먼 고틀립이 FBI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고틀립은 가능한 한 FBI들 사이에 있고 싶었다. 그는 전투에 있어 완전 문외한이었고, 이 저주 받은 곳에서 떨어지는 순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늘 그렇듯, 운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어쩌면 항상 뒤에서 같이 걸어가주는 뉴튼 가이즐러가 없는 탓이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괜히 원망이라도 하면 덜 두렵고, 덜 불안할 것 같아서였다. 

“뭐야. 당신 누구야.”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였다. 고틀립은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하얀 정장이 인상적인 여자와 그를 둘러 싼 건장한 동양인 갱이 있었다. 갑작스런 ‘괴물 셋’의 출현에 FBI와 떨어졌습니다,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어쩐지 머리가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허먼은 대신 다른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화, 화화, 화장실이 여기 아니었잖아요!”

고틀립이 원망했지만, 샤오는 대꾸도 않는다. 괴물은 시체로만 충분했는데, FBI와 떨어뜨려 놓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또 무리를 이끌고 와 상황을 더 이상하게 몰아간다. “사이 좋게 개 목걸이까지 걸고 있잖아!” 고틀립은 절규한다. 다행히 차우와 샤오 중에 누가 바닥에 누워버리진 않았지만-심지어 으아 악, 비명을 지르며 이쪽으로 뛰어 온 가이즐러까지 무사했지만-이게 좋은 신호인지는 의심이 갈 지경이다.

「둘 다 닥쳐.」

 샤오가 중국어로 뭐라고 한다. “뭐라고 한 거야?” 고틀립이 묻자, “몰라. 욕이겠지!” 가이즐러가 대답한다. 둘은 벌벌 떨며 뒤로 허겁지겁 빠지는데, 샤오가 가이즐러에게 말을 건다.

 “저거 네 거지.”


 “어, 아뇨. 어, 그러니까 기술 적으로는 어, 소유권이 있는 건 아니긴 한데요……. 그러니까 쟤네한테도 아직까지는 인권이 있을 거고…….”


 “네 거야, 아니야?”


 “예, 예! 제 겁니다! 그럼요! 흘린 적도 없고 뿌린 적도 없지만 엄밀히 말해서 제가 관여를 하긴 했네요!”


 “어딜 쏴야 해?”


 “예?”


 “어딜 쏴야 하냐고!”


 “어, 급소?”

 좌중이 침묵한다. 심지어는 차우 마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가이즐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가 다시 괴물과 사투를 계속한다. 

 “마음 같아서는 벌써 네놈 대가리를 먼저 터트렸어.”


 “미안합니다.”


 “알면 제대로 된 대답이나 내놔.”


 “저 가운데, 가슴에 달린 입 옆이요!”

 고틀립이 끼어든다. “허먼, 자네 미쳤어? 자네가 뭘 안다고 나서? 조용히 해! 지금은 기어야 할 때라고!” 가이즐러가 핀잔을 주든 말든 고틀립은 강조한다. 

 “저기에요. 확률 적으로 저기일 수 밖에 없어요!” 


 “근거는?” 


 “피보나치!”


 “무슨 소리야?”


 “급소도 똑같았어! 젠장, 내가 왜 이걸 이제야 알게 됐지?”

 어리둥절하게 보는 가이즐러를 두고 고틀립이 아무도 묻지 않는 핵심 외 설명을 계속한다.

 

 “개체 발생 및 진화 양식! 젠장, 뉴트! 네가 실험했을 때도 항상 여러 명을 같이 두면 죽는 개체와 전염 당하는 개체가 있었지……. 저길 봐! 목걸이 색이 달라. 아까 마주친 놈들하고 같은 색도 있고, 아닌 색도 있어. 색깔은 우리에 따른 구분이었을 거야. 한 놈에게 투약하면 전염 당하는 개체와 살해당하는 개체가 있다고 했잖아. 보고서에서도 몇몇 개체는 급소위치가 같았어. 점점 내려가고 있었지. 아마 급소가 같은 놈들은, 역시 같은 놈에게 전염 당한 개체였을 거야. 그럼 말이 돼. 이봐요, 하얀 양반! 거길 쏴 봐요!”

 샤오는 잠깐 고틀립을 돌아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바로 개체를 향해 몇 발 쏜다. 괴물이 이쪽을 바라본다. 놈이 길게 포효하더니 샤오를 향해 달려온다. 그리고 몇 걸음 못 와 쓰러진다. 

“거기 두 놈.”

샤오가 고틀립과 가이즐러를 부른 순간, 창문 깨지는 소리가 난다. 차우가 있던 자리에는 공백과 창문 그리고 벽이 박살 난 흔적이 대신 남아있다. 샤오는 그 쪽을 보다가 말을 도로 잇는다. 

“뭘 봐. 머리가 안 돌아가?”

샤오는 조직원 몇에게 고갯짓을 하고 완전히 고틀립과 가이즐러 쪽으로 돌아서서 말한다. 

“당장 이 자리에서 꺼져.”

***

 뉴튼 가이즐러는 이 모든 일이 대체 무엇인지 셈을 해 본다. 사실 상 우연이 겹치고 겹쳐 어쨌든 모두가 그럭저럭 괜찮게 되었다. 한니발 차우를 제외하면.


 도중에 만난 FBI 수사관들의 말에 따르면 차우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벌집이 된 괴물의 시체만 남겨져 있었는데, 놈의 아가리에-그걸 아가리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특이한 구두 하나와 발리송 나이프가 꽂혀 있었다고 했다. 


 샤오 역시 현장에서 잡힌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대신 벽에는 빨간 스프레이로 “또 보자고, 나의 친구여!” 라는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소식을 전해준 수사관은 도통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어쨌든 끝은 났다.

 이게 책임을 제대로 진 것인지, 가이즐러는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경찰이 준 모포를 두르고 나란히 앉은 둘은 엄격한 표정의 펜테코스트와 한센 청장의 경고-“어쨌든 조사는 더 진행될 거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확실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까.”-까지 받고 경찰차로 천천히 걸어간다.
 
“차라리 자네와 함께하겠다고 생각했어.”

갑자기 입을 연 것은 허먼 쪽이다.

“자네가 없이 사느니 같이 가겠다고 판단 한 거야. 정신 나간 선택이었지. 결과적으로는 잘 됐지만.”


“내가 약속했잖아. 책임을 지겠다고. ”

둘은 한참이나 말 없이 경찰차 뒤 자석에 앉는다. 피곤한 하루다. 가이즐러는 시끄러운 밖의 소란과-“이 빌어먹을 수사권이 왜 자네들에게 양도가 돼?” “개소리는 이쯤 합시다, 신사숙녀 여러분들.”-불빛 따위를 구경하던 중, 이번에는 가이즐러가 먼저 말을 꺼낸다. 

“허먼.”


“왜.”


“내가 한 말 기억해?”


“뭐? 약속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


“아니. 그거 말고.”

뉴튼은 차 시트에 몸을 파묻듯이 기대고는 실실 웃는다.

“우리 집에 야채 떨어졌다고 했잖아. 내일 야채 사러 가자, 자기야.”

 

-fin.
 

⑴ 나치 독일의 선전용 국가 칭호.

⑵ Benjamin David "Benny" Goodman, 1930년대를 주름잡은 스윙 재즈의 아이콘 격 클라리네스트.

⑶ 글쓴이 Limpan이 이야기 진행 편의를 위해 설정한 가상의 미국 도시

⑷ 혹은 윈드 토커로 불리는 코드 토커 대원들의 조직과 활약에 대해, 실제 역사적

사실에 분명히 어긋나는 부분이나 이야기 진행을 위해 각색하였음.

⑸ Welshly Arms의 노래 Love In a Minor Key 제목을 차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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