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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nytete

 심하게 말한 감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말은 틀리지 않았어요. 허먼의 얼굴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제이크는 씨근덕거리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그와 허먼 사이에 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싸움을 중재하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허먼은 두통이 몰려올 정도로 얼얼한 코를 감싸 쥐었다 놓았다. 피가 들러붙어 안 그래도 초췌해보이던 얼굴이 더 못 봐줄만 했지만, 목소리만큼은 꽤나 평온했다. 우린. 당신까지 잃을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겁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마시죠. 제이크는 그가 허먼의 얼굴에 냅다 주먹을 꽂아 넣기 전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허먼은 아까 했던 대답을 다시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 정도까지 속을 긁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픈 기억을 하나씩은, 아니-수많은 유리조각들을 속에 품고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었기에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앓았던 시간들.

 

"당신이 나라고 해도, 당신이 내 상황이었다면."

 

허먼 고틀립은 비난하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말하듯-그리고 그는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했다-덤덤할 뿐이었다. 그리고 모두 알고 있겠지만 이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방도기도 합니다. 그에게서 정보를 빼내려는 시도가 모두 실패했어요. 나는 그의 뇌와 프리커서의 뇌 둘다 한번씩 들어가 본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요. 사람들은 반대햘테지만, 상관없었다. 반대하라지. 그들을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다. 제이크의 주먹이 꽉 쥐여지는 걸 보며 아마라는 그를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와, 오랜만이지?“

 

허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쳐다보다 제가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를 검진할 의사가 같이 있었다. 그들 말로는 뉴튼은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별로 그래 보이진 않았다. 그는 늘 말이 많았다. 그의 눈은 제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콧등이 까졌네. 누가 때렸어? 무슨 일로? 허먼은 대답하지 않았다. 뉴튼은 한숨을 푹 쉬고 잠시 조용해졌지만 피를 뽑을 때쯤엔 또다시 질문을 퍼부었다.

 

"얜, 난, 우린 네가 보고 싶었는데. 다들 네 이름을 꺼내는 걸 꺼리더라. 나는 다 알고 있어. 뇌 속을 다 들여다봤으니까. 너도 무슨 느낌인지 알지, 드리프트! 그게 모든 걸 바꿨잖아, 보고 싶지 않아? 밤마다 꿈을 꾼다며, 꿈속에서 뭘 보는지 말해줬잖아. 네 소중한 친구는 거기 갇혀있는데, 맘에 들어? 허먼, 아. 미안해. 네 목을 조르고 싶지 않았어.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아냐, 그건 나였어. 미안.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거든."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건 네 눈을 볼 때 보이는 너의 고통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예전을 그리워하며. 열기가 가득했던 대화들과 마주 나누던 눈길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걸 내비치는 것은 지금 할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할 일은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유리 뒤의 사람들에게 사적인 감정이 전혀 없음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브리치 너머의 세계를 완전히 으깨버리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드리프트가 꼭 필요하다. 그렇게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허먼 고틀립은 스스로가 한심하단 생각을 했다. 그는 메가 카이주의 죽음에 기뻤다. 또다시 세상을 구했다. 처음엔 너무나 기뻤다가 갑자기 쿵 하니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번엔 혼자였다. 세상을 구했지만 뉴튼은 곁에 없었다. 그는 아무 표정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혀를 삼키기라도 했어? 제발 말 좀 해봐. 그는 뉴튼의 눈만을 들여다본다. 겁에 질린 눈을. 의사는 생채기들에 약을 바르고 천천히 뉴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뉴튼은 외마디 비명같은 말을 허먼에게 외치고 눈을 살며시 감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

 

연구실에 뉴튼은 라디오를 틀어두고 지직거리는 슬픈 음악에 맞춰 찻잔에 와인을 따라왔다. 허먼은 속으로 가사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흐느끼지도, 티내지도 않을 거 에요. 속부터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뉴튼의 감긴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의사는 뉴튼의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 뉴튼은 아주 조용했다.

 

"신체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그럼 준비합시다."

 

 

 

 

 

 

 

 

 

 

뉴튼은 벽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벽이 아주 딱딱했다. 그들은 뉴튼이 벽에 머리를 박고, 박고, 박고 또 박기를 바랐다. 그들은-뉴튼이 완전히 죽기를 바랐다. 또 다시, 또 다시, 또 다시. 뉴튼은 벽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대고만 있었다. 머리위의 창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아, 허먼. 허먼, 날 구해줘. 말이 입을 넘지 못하고 목울대에 고여 출렁였다. 벽이 너무 단단했다. 제발.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문이 열린다면 벽에 머리를 박을 필요가 없는데. 공포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문밖에선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허먼의 얼굴이 창밖으로 보였다. 일렁이는 고통의 덩어리가. 간수가 노래를 불러댄다. 자신이 불렀던 노래를.

 

그때 우리는 싸웠었어. 허먼은 뉴튼을 비난했고, 뉴튼 역시 되받아쳤다. 마침 지나가던 스테커의 중재가 없었다면 아마 둘의 고성은 몸싸움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씨근덕거리던 너를, 원망스레 쳐다보던 눈을 보며 뉴튼은 갑자기 무서워졌던 기억이 있다. 벌어진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게 아닌데. 그 날 뉴튼은 찻잔 두개에 싸구려 와인을 따라 선을 넘어 갔다. 미안하단 말과 약간의 소요와 씁쓰레한 와인 향기. 뉴튼은 그때가 너무나 생생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몽롱한 정신의 그를 옮겨온다. 허먼은 뉴튼에게 구속복을 입혀 앉혀두고는 정말 오랜만에 그의 뺨을 살짝 매만졌다. 허먼은 그게 어떻게 보일지 알았다.

 

결국에 둘의 관계는 공공연한 가십거리였다. 첫 번째 전쟁 중에 많은 사람들이 연구실에서 둘이 서로를 쳐다보며 시시덕거리는 걸 보았고, 둘 다 흐트러진 차림으로 급한 호출에 같이 나타나는 걸 보았다. 뉴튼의 팔뚝엔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잇자국이 나있기도 했다. 둘은 싸웠고, 화해했으며,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소소한 것으로 서로를 물어뜯다가도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러니 허먼은 방금 전의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는 알았다. 그는 평소 남들과의 접촉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전보다 초췌해진 뺨, 수염이 올라와 조금 꺼슬거리지만 따뜻한 피부의 감촉까지 허먼은 고루 느꼈다. 좋게 보일 리 없음에도, 그럼에도 허먼은 뉴튼을 조심스레 붙든다. 즐거워 보이는 미소가 뉴튼의 입가에 맴도는 것을 보면서. 뉴튼, 만약 네가 계속 내 곁에 있었다면 좋았을 거 같다. 그 말은 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번에도 예전처럼 같이 하면 되는 거야."

 

허먼은 차분하게 손에 든 기기의 크고 빨간 스위치를 꾹 눌렀다.

 

 

 

 

 

 

 

 

기억나는건 별로 없었다. 뉴튼의 머릿속에 들어갔고, 깜깜한 어둠을 보았다. 익숙하고 끔찍한 풍경들을 보았다. 프리커서들을 보았다. 허먼은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뉴튼 가이즐러는 어디에 있지? 마치 물 위를 흐르는 나뭇잎이라도 된 듯이 붙잡을 수 없는 이미지들이 휙휙 스쳐지나갔고, 겨우 손을 뻗어보아도 파편처럼 깨져 흩어졌다. 뉴튼은 너무 희미했다. 안 돼. 놓칠것만 같아. 그럴순 없어. 반복적인 쿵, 쿵거리는 소리. 심장소리인가? 어딘가 부딪힌 듯 벽에 등이 닿았다. 제 앞엔 어린 불량소년들 대신 프리커서가 서 있었다. 지팡이를 분지르고 내려다보며 웃는 그것들을 올려다보다 허먼은 이를 악물고 무리를 헤치고 나갔고, 그때 잔상처럼 지나가던 기억 하나를 붙들었다.

 

뉴튼은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역에서.

 

뉴튼은 샤오 그룹으로 이적하기로 결심했었다. 페이가 더 좋고, 종전 후에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다는데. 허먼, 이것 봐. 자네가 여기에 머물고 싶어하는 건 알지만 나를 봐서라도 같이 가줄 순 없어? 뉴튼의 말에 허먼은 고개만 저어보였다. 적어도 내가 가는 날 마중이라도 나와 줘. 그리고 허먼은 그때 인사를 하러 가지도 않았다. 이미지 속의 뉴튼은 허먼을 찾기라도 하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허먼은 없었고, 다음 기차, 그다음 기차를 보내면서 뉴튼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붙잡아 안았다. 뉴튼, 뉴튼. 기다렸어?

 

"허먼."

 

"집에 가자."

 

코끝이 또 아렸다. 멍한 정신으로 머리에 쓴 헬멧을 벗어던지고 올라오는 구토감을 삼키며 허먼은 옆을 돌아본다. 코피를 흘리는 뉴튼이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채 바닥을 짚고 있다. 허먼. 뉴튼은 울고 있었다.

 

"아주 긴 악몽을 꿨어."

 

"괜찮아."

 

우린 괜찮을 거야. 허먼은 머뭇거리다 결국 뉴튼을 꽉 안고 싶은 충동에 몸을 맡겼다. 덜덜 떨리는 몸을 서로 부둥켜안고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뉴튼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허먼, 날 찾아줘서 고마워. 뉴튼은 한참 뒤에나 훌쩍거리며 그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아주 긴 악몽같이 느껴졌다. 그 끝에 있던 것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한 사람 뿐이었다. 그것으로 아주 충분했다.

 

 

 

 

 

 

 

 

 

 

 

 

 

 

제이크는 막 한 페이지를 겨우 채우고 안그래도 짧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보고서 같은걸나한테 맡기면 어쩌란 말야. 결국 입이 댓발 나와서 자판을 두들기는 손이 느려지기만 했다.

 

"젠장, 이런걸 왜 내가 해?"

 

"넌 나랑 세상을 구한 레인저에다가 스테커 펜타코스트의 아들이잖아."

 

거기다 마코 모리의 남동생이고. 결국 관련자들 중에 대외적으로 서기 딱 좋은 인간이 된거야. 빨리 쓰고 꼼꼼하게 외워. 한창 투덜거리고 있던 그 앞에 잔 하나가 턱 놓였다. 코코아, 마시멜로우 3개. 아마라는 제 잔을 들고 의자를 하나 끌어와 앉았다. 나 읽어볼래. 제이크는 코코아를 한모금 마시고 느리게 눈을 꿈벅였다. 아직 덜 썼는데. 그 말 뒤에 아마라의 코웃음이 바로 따라오는 것에 제이크는 양손을 살짝 들여보였다. 오케이, 읽어봐. 평가는 나중으로 미루고.

 

"실험체와 참가자 둘은 드리프트 재시도를 하였고, 성공했습니다. 정신의 감염을 치료한 것이죠. 이는 파트너를 잃은 파일럿들을 위한 가상 치료 프로그래밍의 데이터 구축에 큰 영향을....이 말 다 이해는 한거야?"

 

"아니."

 

"이 모든 사단이 한 사람이 매개가 되어 일어난 것은..."

 

"그 사실은 아직 대중에 공표하기엔 위험해. 아무리 그가 다 나았더라도 일어난 일은 그대로니까. 거기다."

 

"아, 악몽 이야기 말이지. 닥터 고틀립이 꾸준히 자기 꿈과 그의 꿈을 기록하고 있어. 그게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모르지. 모르지만 섣불리 브리치로 들어갈수가 없을 정도는 된다고 봐."

 

"신중해졌네."

 

"보고 배우시지, 하긴 난 너무 멋져서 아무도 따라갈 수 없지만..."

 

"제발 좀..."

 

"괴물이 보인다 정도의 얘기였다면 그냥 넘겼을거야."

 

"기록물들의 내용이 다 같아. 둘이 똑같은 꿈을, 계속 꾸고 있다는 거야."

 

"다른 지구에서의 다른 세계의 멸망이라고 하던데, 궁금한 게 있었어."

 

"제이크."

 

"적어도 거기서는 마코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신중해졌단 말 취소야, 머저리."

 

"둘다 한번 정도는 더 견딜 수 있을거라고, 드리프트 한번 정도는."

 

 

 

 

 

 

 

 

 

 

 

허먼과 뉴튼은 같은 악몽을 몇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꾸고 있었다. 다른 세계의 그들은 커피잔을 들고 셰터 돔 밖을 걷는다. 저 멀리서 마코가 걸어오고, 허먼은 인사를 하려 막 몸을 돌린다. 어디선가 휙 소리가 들린다. 둔탁한 무언가가 뒤에 내려앉는 탓에 바닥이 흔들려 커피를 쏟는다. 화창한 하늘에 그늘이 가려지고, 마코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데, 허먼과 뉴튼은 그때서야 뒤를 돌아보게 된다. 카이주가 나타난 것이다. 이 다음은 이미 겪은 일들처럼 생생하다. 모두 죽는다. 그들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사람이 죽고, 지구는 불탄다. 꿈인데, 너무도 생생한 꿈이기에 둘은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난다. 의아함이 먼저 밀려든다. 우리가 구하지 못한 세계를 보는 기분이야. 허먼이 그렇게 먼저 말을 꺼낸다. 네가 보는 걸 나도 본 것 같아. 이제 어쩌지? 뉴튼이 말을 받는다.

 

 

둘은 다시 헬멧을 집어든다. 제대로 봐야 해.

 

 

"우리가 거길 구할 수 있을까, 허먼?"

 

 

"드리프트로 해결책을 볼 수 있길 바라고 있어. 이게 진짜든, 우리의 정신이 만든 병증이든간에 말이지. 답은 우리 머릿속에 있을테니까."

 

 

"자네가 뭔 말을 해도 멋져보여, 젠장할."

 

 

"....한번만 더 말해봐."

 

 

뉴튼은 웃으며 허먼에게 손을 내민다. 낯간지럽다고도 안 하네. 허먼은 조심스레 손을 감싸쥔다. 조금은 그렇지만 계속 듣고 싶어서. 붉어진 귀를 보며 뉴튼은 느릿느릿 대답한다. 네 모든게 내겐 멋져보여. 내 영웅이라고, 넌. 허먼의 어깨엔 그제서야 힘이 풀린다.

 

 

"우릴 구할 준비가 되었나?"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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