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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데이드 님

@Alid_ade

*학교폭력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자, 그래서 이 2차 방정식 풀이에 대해 이야기 해 볼 사람 있는가?"

 허먼 가틀립은 곧장 손을 들었다. 그리고 또 아무도 손을 들지 않다가, 저 재수없는 교환학생 뉴튼 가이즐러가 손을 들었다. 뉴튼은 연신 웃는 얼굴로 곧 일어날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허먼은 비교하란 듯이 정자세로 고쳐 앉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존경해 마지않는 선생님의 시선이 스쳐간다 했더니 곧 이름을 호명한다.

"뉴튼 가이즐러 군?"

 허먼은 손을 내렸다. 분하다. 이게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이 김나지움 안에서 제일 천재인 자신이 연신 기회를 뺏기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교환학생인 뉴튼 가이즐러에게. 허먼은 졸업하기 어린 나이지만 벌써 아비투르를 준비하고 있었다. 교내 최고 성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난 할 수 있어. 아니, 넌 할 수 없어. 뉴튼은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그의 악수를 거절한 게 잘못된 일이었을까? 아냐. 나는 저런 놈 따위의 호의 같은 것 필요없어. 친해질 필요도 없다고. 교환학생 주제에. 

 뉴튼 가이즐러는 인사로 어리숙한 독일어를 했다. 귀엽게 여겼는지, 다른 학생들이 들러붙었다. 뉴튼은 애초에 오는 사람을 내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두와 친하게 지냈다. 교우관계가 좋다 못해 몸 움직이는 건 젬병인데도 같이 운동하자느니 하는 제안들이 넘쳐났다. 방과 후 뉴튼 가이즐러가 어색하게 공을 쫓아다니거나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허먼은 그 어색한 움직임에 절로 웃음이 났다. 그 때가 뉴튼 가이즐러를 보며 유쾌해 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흥, 널 놀리는 거라고. 멍청아. 어느새 허먼은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끌고 좌석에 앉아 그를 지켜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 뉴튼 가이즐러도 못하는 게 있다는 건 어느새 유쾌를 넘어서 어떤 위안으로까지 다가왔다.

-

 교정이 여느때보다 어둡다. 뉴튼의 어지러운 움직임에 홀린 나머지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어느새 사위는 어두워지고 사람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허먼은 그것을 깨닫자마자 가방을 메고 지팡이를 챙겨 절뚝절뚝 계단식 좌석에서 내려왔다. 아이들은 아직 어렸다. 허먼의 다리는 그들에겐 좋은 장난감이었다. 허먼은 그런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걸 이해하려는 자신도 아이임을 이해하려면 허먼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겁을 먹자 다리는 더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운동장을 돌아 나가려는데, 그 어귀에서 아이들 몇이 튀어나왔다. 아직 농구를 하고 있었던지 그 들의 손에는 농구공이 들려있었다. 허먼이 급히 발길을 돌리는 순간 아이들이 살갑게 그를 불렀다.

"허먼!"

물론 그들은 빈정거림을 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매일 앉아있는 허먼 가틀립이잖아?"


"여긴 웬 일이래?"

세 명이 허먼을 둘러싼다. 허먼은 뒤로 발을 뺐지만 누군가 다리로 걷어차듯 막아서서 그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같이 농구 할래?"


"너 그렇게 앉아있으면 다리 더 안 좋아지는 거 아냐?"


"운동 해야지, 운동."

허먼은 당혹감과 낭패감으로 지팡이를 꾹 쥐었지만 얼마 안가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붙들어가 허먼은 아차 하는 사이에 뺏기고 말았다. 지팡이는 볼썽사납게 던져져서 바닥에 굴렀다. 곧 허먼의 신세도 저리 될 것이다. 

"집에 가야 돼."

허먼이 미약하게 저항하듯 말했으나 셋은 웃을 뿐이었다. 그러곤 곧 둘이 팔을 붙들어 끌듯이 농구 코트로 데리고 갔다. 허먼이 버둥거리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농구 코트를 비추는 할로겐 등이 눈이 아플정도로 밝았다. 

"같이 농구 하자니까."

공을 들고 있던 아이는 위협적으로 코트 바닥에 공을 퉁퉁 튀겼다. 허먼은 가까스로 일어나서 비척비척 코트를 나가려고 했으나 다시 끌려와 내팽개쳐졌다. 그는 한바퀴 굴러 엎어졌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공을 튀기던 아이가 다가와서 위협적으로 공을 들었다.

"안 되겠네. 잘 못 걸으니까, 공은 몸으로 받아야겠다."

그리고 허먼의 얼굴로 던지려는 순간 뉴튼의 높고 쨍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빽 튀어나왔다.

"야!"

-

셋이 허둥지둥 도망가자, 뉴튼이 날다시피 허먼의 옆으로 뛰어왔다. 허먼은 웅크리고 있다가 겨우겨우 일어나 앉았다. 뉴튼은 빠르게 지팡이를 가져다 주고, 가방도 챙겨주고는 허먼의 옆에 주저앉았다.

"허먼."

정말 재수없는 뉴튼의 목소리였지만 허먼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뉴튼이라서 다행이라고. 허먼은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다시금 지팡이를 꾹 붙들었다. 목재 지팡이가 바닥에 굴러 생채기가 난 것이 만져졌다. 몸이 아픈데, 어디가 아픈건지 확실히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다여서 허먼은 한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재수없는 뉴튼 가이즐러도 그렇게 눈치없는 건 아닌지 잠자코 허먼의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

 

"무릎."


"뭐?"


"무릎이 아파."

훌쩍. 뉴튼은 잠깐 굳어있다가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니냐(허먼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뉴튼 가이즐러.), 내가 업어야 되는 게 아니냐(허먼은 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날 떨어트리지 않는게 다행이겠다, 뉴튼 가이즐러.) 호들갑을 떨더니 곧 자기 가방을 뒤져 반창고를 꺼냈다. 

"바지 걷을게."

허먼이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이자, 뉴튼은 답지않게 조심스러운 손길로 바지를 걷고는 내팽개쳐지느라 처참히 깨진 무릎을 살폈다. 

"이물질은 안 들어간 것 같으니까 그냥 반창고만 발라도 될 거야."

허먼은 달리 대답하지 않고 코를 훌쩍거렸다. 뉴튼은 곧 조심조심 상처에 반창고를 덧대었다.

"괜찮지?"

다시 또 끄덕임. 뉴튼은 무슨 중대한 수술을 마친 의사처럼 제 이마를 손등으로 훔쳐내고는 뿌듯하게 웃었다. 그리곤 먼저 일어나 허먼에게 손을 내밀었다. 허먼은 손을 붙잡고 일어나 수월하게 지팡이로 땅을 짚었다. 허먼은 아주 하기 싫지만, 아주 오랜만에 할 수 밖에 없는 말을 해야 함을 깨달았다.

"고마워."


"하하, 이 뉴튼 님께? 겨우 이 정도 가지고."

허먼은 곧 후회했으나 해버린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뉴튼은 허먼의 옆에 착 붙었다. 허먼은 왠지 이제는 뉴튼이 운동장에서 이상하게 움직이는 꼴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자, 이제 그만. 내가 업어줄게. 싫어. 내가 설마 널 놓치겠냐? 공은 놓쳐도 넌 안 놓쳐. ...알았어. 그나저나 너 왜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있었냐? 너 보느라고. 아니, 뉴튼! 갑자기 흔들거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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