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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 님 ◆

용기의 근원 ​

우유맛 쿠키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땅에 쓰러져 있는 다크초코 쿠키를 보았다. 벌써 몇 분째 다크초코 쿠키는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역시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가서 다른 쿠키들을 불러와야 할까. 아니면 그거라도 다시 꺼내 볼까. 우유맛 쿠키는 '그것'을 파묻은 곳을 노려보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견디다 못한 우유맛 쿠키가 몸을 일으켜 걸음을 떼던 바로 그때였다. 바닥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다크초코 쿠키님! 괜찮으세요?"

 

다크초코 쿠키가 눈을 떴다. 우유맛 쿠키는 반가운 나머지 엉엉 울고 싶었다.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일어나 앉은 다크초코 쿠키는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온 우유맛 쿠키가 다크초코 쿠키를 끌어안으려고 한 순간, 다크초코 쿠키의 입에서 쉰 음성이 흘러나왔다.

 

"넌, 누구지?"

 

다크초코 쿠키를 향해 뻗은 우유맛 쿠키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



 

'너무 위험한 방법이에요.'

 

퓨어바닐라 쿠키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다크초코 쿠키는 마법검과 너무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이미 손쓸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지금 강제로 분리하면 다크초코 쿠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둠마녀 쿠키의 힘에 오랫동안 맞서 온 퓨어바닐라 쿠키는 물론이고 많은 쿠키들을 치유한 허브맛 쿠키나 스파클링맛 쿠키도, 마법 전문가인 라떼맛 쿠키나 에스프레소맛 쿠키도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심지어 다크초코 쿠키와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감초맛 쿠키나 석류맛 쿠키도 그 얘기에는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그 자신도 무사하기 어려울 텐데요.'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의 옷자락을 붙들고 말렸다.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다크초코 쿠키님이 위험해지시는 건 싫어요. 그러나 다크초코 쿠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늦으면 나는 마법검에 완전히 잠식될지도 모른다. 나를… 잃게 될지도 몰라. 내게는 그게 더 위험해.'

 

옛 일을 회상하듯 괴롭게 말한 다크초코 쿠키는 우유맛 쿠키를 보며 미소 지었다.

 

'너를 못 알아보게 되는 건 싫구나.'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를 더 말릴 수 없었다. 꼭 해야만 하니, 내가 방법을 찾아보는 동안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는 없겠니, 퓨어바닐라 쿠키도 안타까워하며 만류했지만, 결국 둘 다 다크초코 쿠키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다크초코 쿠키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결행의 장소까지는 우유맛 쿠키와 함께 갔다. 왕국 안쪽의 깊은 숲속이었다. 퓨어바닐라 쿠키와 몇몇 쿠키들이 왕국에서 만일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는 우유맛 쿠키에게 마법검을 파괴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나 다른 누가 아닌, 우유맛 쿠키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맞는 것 같다고. 맞는 것 같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유맛 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무서웠지만, 다크초코 쿠키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다크초코 쿠키가 무슨 일을 하든, 자신만은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 선택이 잘못되었던 걸까.

 

다크초코 쿠키를 진찰한 퓨어바닐라 쿠키가 진료실 문을 열고 나왔다. 우유맛 쿠키를 본 퓨어바닐라 쿠키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요. 이건 마음의 문제에 가까워요."

 

퓨어바닐라 쿠키는 말끝을 흐렸다.

 

"여러 가지로 노력해 보겠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법이나 약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유맛 쿠키만이 아니다. 다크초코 쿠키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아니, 그의 삶에 의미 있었던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왕자였던 기억. 아버지와 지냈던 기억. 모험을 떠났던 기억. 어둠의 유혹에 굴복했던 기억. 누군가의 영웅이었고, 누군가와 사랑을 했고, 누군가를 위해 다시 한 번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했던 기억까지도. 

 

사소한 기억은 남아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는 포크와 나이프를 올바르게 사용했고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고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했다. 단 음식보다 쓴 음식을 즐겨 먹었고 무기를 잘 다뤘으며 필요할 때는 여전히 민첩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유는 알지 못했다. 왜 쓴 음식이 익숙한지 모르면서 다크초코 쿠키는 쓴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왕국의 쿠키들은 단 한 명도 알아보지 못했다. 우유맛 쿠키는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다크초코 쿠키님 바보.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쿠키라고 하셨잖아요.'

 

'저를 잊기 싫어서 결심한 거라고 하셨잖아요.'

 

우유맛 쿠키와 다시 만난 첫날에도 다크초코 쿠키는 비슷한 말을 했었다.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기억이 안 난다고. 그땐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크초코 쿠키님을 원망하면 안 돼. 날 위해 결심하셨는데, 내가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마법검을 파괴한 영향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이라면 마법검과 관련된 일이나 마법검을 손에 넣은 이후의 일만 잊어버려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퓨어바닐라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기억을 일깨워 주는 일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선택해서 돌아와야 한다고. 

 

'그럼, 만약 다크초코 쿠키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우유맛 쿠키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자 퓨어바닐라 쿠키가 우유맛 쿠키의 두 손을 붙잡고 강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를 닮아 강한 아이니까, 아무리 괴롭고 혼란스럽더라도 이겨내고 돌아올 거예요.'

 

퓨어바닐라 쿠키는 우유맛 쿠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소중한 이가 기다리고 있다면, 반드시.'

 

정말 그럴까.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가 강한 쿠키라는 건 믿었지만, 다크초코 쿠키가 겪은 일들은 너무도 불행했다. 차라리 그대로 잊는 게 낫지 않을까. 어둠에 자신을 내맡겨 제 손으로 아버지를 베고 왕국을 몰락시킨 기억 따위, 평생 못 찾는 게 낫지 않을까. 어쩌면 다크초코 쿠키는 잊고 싶어서 잊었는지도 모른다. 전부 잊거나 잃어버려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이 없는 다크초코 쿠키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전처럼 음울하지는 않았다. 왕국 생활에 적응하고 나서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그를 무겁게 짓누르던 쓰라린 후회도, 번뇌도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기억을 전부 잃었다는 사실에 불안해했지만 그 정도는 보통의 반응이다. 

 

예전만큼 무서운 인상이 아니게 된 다크초코 쿠키를 신기해하며 어린 쿠키들이 다가오자, 다크초코 쿠키도 곤란한 기색 없이 아이들과 말 상대를 하며 놀아주었다. 젊은 시절처럼 호기 넘치지는 않았지만 분명 우유맛 쿠키가 본 기억 속의 다크초코 쿠키가 떠오르는 자상한 모습이었다.

 

이대로가 더 나을지도 몰라. 벤치에 앉은 우유맛 쿠키는 팬케이크맛 쿠키를 안아 올리는 다크초코 쿠키를 멍하니 보며 생각했다. 

 

처음엔 다크초코 쿠키가 자신과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서운했지만,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다크초코 쿠키의 관계라면 다시 쌓아가면 된다. 슬프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애초에 반려가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 지금처럼 다크초코 쿠키의 곁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았다. 다크초코 쿠키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을까? 다크초코 쿠키가 그것을 바랄까? 이런 중요한 문제를 다크초코 쿠키에게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걸까. 다크초코 쿠키를 실망시키는 게 아닐까.

 

하지만 지금 저렇게 행복해 보이시는데.

 

다크초코 쿠키는 팬케이크맛 쿠키를 땅에 내려준 다음 눈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팬케이크맛 쿠키가 도도도 달려가던 모습을 보던 다크초코 쿠키가 문득 우유맛 쿠키를 올려다보았다.

 

"넌 자주 날 그렇게 보는구나."

 

"아."

 

우유맛 쿠키의 얼굴이 붉어졌다. 너무 빤히 보고 있었던 걸까.

 

"저, 어릴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릴 때?"

 

"다크초코 쿠키님이 꼭 방금처럼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거든요."

 

우유맛 쿠키는 그날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우유맛 쿠키 마을이 왜 위험에 처했고 다크초코 쿠키가 어떻게 구해주었는지, 자신과 다크초코 쿠키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우유맛 쿠키가 겸연쩍게 덧붙였다.

 

"그때부터 반해서, 다크초코 쿠키님처럼 영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우유맛 쿠키에게는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다. 하지만 다크초코 쿠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너는 언제나 날 훌륭하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하지만 다크초코 쿠키님은 훌륭하신 분인걸요."

 

부담스럽게 한 걸까?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우유맛 쿠키의 옆에 앉은 다크초코 쿠키는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나는 그렇지 않아."

 

다크초코 쿠키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 안에… 어떤 갈증이 있어.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랐는데 끝내 이루지 못한, 그런 허망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런 허망함이 나를 끊임없이 불러대고 있어.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가, 그리 훌륭했을 것 같지 않아."

 

우유맛 쿠키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크초코 쿠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크초코 쿠키가 우유맛 쿠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나를 잘 안다고 했지. 그럼 이 감정의 정체가 뭔지도 알겠어?"

 

우유맛 쿠키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나온 대답이었다. 우유맛 쿠키를 보던 다크초코 쿠키가 시선을 돌렸다.

 

"그래… 혹시라도 생각나면 말해다오."

 

우유맛 쿠키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무서운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법검은 파괴되었고 퓨어바닐라 쿠키가 봉인도 했지만,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퓨어바닐라 쿠키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쿠키라면 몰라도 두 번이나 연결된 적 있는 다크초코 쿠키는 마법검에서 봉인된 어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법검이 아니라도 어둠의 마법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들은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가 과거를 잊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 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모든 것을 잊은 상태에서도 다크초코 쿠키가 어둠의 힘을 다시 원한다면, 그래서 과거와 비슷한 일이 되풀이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지?



 

*



 

"당신이 먼저 진실을 말해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유맛 쿠키."

 

다크초코 쿠키에게 일어난 일은 왕국의 모든 쿠키들이 알고 있었다. 몇몇 쿠키들은 걱정해주고 도와주려고 하기도 했다. 아몬드맛 쿠키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 일은 형사 사건도 아니고 제가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만, 경험에서 드리는 말입니다. 아무도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주변 쿠키들에게 신뢰를 잃을 겁니다. 그쪽이 더 혼란스럽고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아몬드맛 쿠키는 예의 딱딱하지만 나름대로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조언했다. 마법검이 어둠 마법을 사용할 뿐 다크초코 쿠키가 마법사이거나 한 건 아니지만 직업이 형사인 만큼 신경 쓰이는 것이리라. 다크초코 쿠키가 다시 어둠의 힘에 손대면 다크초코 쿠키뿐만 아니라 왕국에도 위험이 될 수 있다.

 

아몬드맛 쿠키의 말을 이해했고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우유맛 쿠키는 선뜻 아몬드맛 쿠키의 조언을 따를 수가 없었다. 다크초코 쿠키를 곁에서 지켜본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가 과거로 인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잘 알았다. 진실을 알게 되면 다크초코 쿠키가 괴로워할 게 눈에 선했다. 

 

그날 이후로 우유맛 쿠키는 전보다 더 다크초코 쿠키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다크초코 쿠키는 갈증이나 허망함 같은 이야기를 다시 우유맛 쿠키에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유맛 쿠키가 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면 이따끔씩 그날처럼 쓸쓸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는 했다. 우유맛 쿠키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한밤중에 자다가 깨기도 했다.

 

'말씀드려야 해.'

 

검을 수련하는 다크초코 쿠키를 보며 우유맛 쿠키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드려야 해. 나는 다크초코 쿠키님을 속이고 있는 거야.' 

 

다크초코 쿠키는 여전히 힘도 민첩함도 뛰어났고 검도 능숙하게 다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는 오랫동안 마법검을 사용해 왔다. 마법검이 빌려주는 어둠의 힘에 익숙해져 있었다. 검격을 날릴 때면 습관적으로 높이 뛰어서 검을 내려쳤지만, 보통 대검으로는 번개를 쓸 수 없어서 착지할 때 비틀거리고는 했다. 고치려고 했지만 몸에 익은 버릇이라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크초코 쿠키님."

 

숨을 고르던 다크초코 쿠키가 우유맛 쿠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지?"

 

'다크초코 쿠키님은 다크카카오 쿠키님을 향해 마법검을 휘두르셨어요. 다크초코 쿠키님이 어둠마녀 쿠키의 편에 서시고 다크초코 쿠키님의 왕국은 무너졌어요.'

 

"저, 다크초코 쿠키님이 행복하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다크초코 쿠키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유맛 쿠키를 가만히 보던 다크초코 쿠키가 손을 뻗었다. 다크초코 쿠키의 손가락이 우유맛 쿠키의 이마를 덮은 곱슬머리에 닿았다. 우유맛 쿠키가 놀란 표정을 짓자 다크초코 쿠키가 움찔하며 손을 내렸다.

 

"미안하다."

 

"괜찮…아요."

 

기억을 잃은 뒤로 다크초코 쿠키는 우유맛 쿠키에게 반려다운 애정 표현을 한 적이 없다. 반려 사이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는 했지만, 우유맛 쿠키도 다크초코 쿠키에게 반려 역할을 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괜히 부담을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크초코 쿠키 쪽에서 스킨십을 한 것은 처음이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끼며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의 손이 닿았던 앞머리를 매만졌다. 그래서 다크초코 쿠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지 못했다.

 

그날 저녁 다크초코 쿠키가 사라졌다.

 

비가 쏟아질 것처럼 잔뜩 구름이 낀 저녁이었다. 이슬비 정도는 괜찮지만 소나기라도 맞으면 쿠키들은 금세 몸이 눅눅해진다. 모두들 일찍부터 쿠키 하우스에 들어가 있었지만, 다크초코 쿠키는 저녁 늦게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왕국을 돌아다니며 다른 쿠키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다크초코 쿠키를 보았다는 쿠키가 없자 우유맛 쿠키는 퍼뜩 의심이 들었다.

 

설마.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채워지지 않은 갈증. 끊임없이 불러대는 목소리. 우유맛 쿠키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숲으로 향했다. 나중에는 정신없이 뛰었다.

 

마법검의 잔해가 묻힌 바로 그 자리에 다크초코 쿠키가 서 있었다.

 

어둠속이지만 다크초코 쿠키의 얼굴은 무시무시했다. 마치 평생의 원수와 싸우는 것처럼 험악한 기세로 삽을 들고 흙을 퍼내고 있었다. 우유맛 쿠키는 비명을 지르며 다크초코 쿠키에게 달려갔다.

 

"다크초코 쿠키님, 안 돼요!"

 

다크초코 쿠키의 팔을 붙잡으며 우유맛 쿠키가 소리쳤다.

 

"안 돼요, 그러지 마세요."

 

다크초코 쿠키가 우유맛 쿠키를 홱 쏘아보았다.

 

"알고 있었나?"

 

"네?"

 

"내가 여기에 올 줄 알고 있었어?"

 

우유맛 쿠키의 몸이 굳었다.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크초코 쿠키는 우유맛 쿠키를 노려보며 무섭게 추궁했다.

 

"이곳에 뭐가 있는 거지? 왜 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내게 숨기고 있는 게 뭐냐. 말해."

 

우유맛 쿠키는 더듬더듬 털어놓았다. 다크카카오 왕국의 왕자였던 것, 마법검을 손에 넣었던 것, 왕국을 떠나 어둠마녀 쿠키를 섬겼던 것, 이곳 왕국으로 와서 마법검을 파괴하기로 결심했던 것. 우유맛 쿠키의 이야기를 듣던 다크초코 쿠키의 손에서 차츰 힘이 빠졌다. 다크초코 쿠키는 삽을 늘어뜨리며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랬군, 내가……."

 

다크초코 쿠키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갈증은… 힘에 대한 갈증이었나."

 

우유맛 쿠키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파헤쳐진 흙을 덮고 싶었지만, 다크초코 쿠키를 자극할까봐 그럴 수도 없었다.

 

불현듯 다크초코 쿠키가 입술을 달싹였다.

 

"아버지."

 

우유맛 쿠키가 움찔했다. 다크초코 쿠키가 고개를 들고 우유맛 쿠키를 보았다.

 

"내게 아버지가 있었어. 내 손으로 그분을 베었다. 그렇지?"

 

"다크초코 쿠키님, 기억, 기억이…"

 

"기억이 다 돌아온 건 아니야. 하지만 내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알겠다."

 

다크초코 쿠키는 지그시 감았다가 뜨고 물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시지?

 

"그건… 아무도 몰라요."

 

"모른다고?"

 

"퓨어바닐라 쿠키님도 찾으러 가고 싶어하셨지만, 아직은 왕국을 두고 혼자 떠나실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런가……."

 

힘없이 중얼거린 다크초코 쿠키가 잠시 후 피식 웃었다.

 

"역시 영웅 따위가 아니었군."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유맛 쿠키가 다크초코 쿠키 어깨를 붙들고 달려들 듯 말했다.

 

"다크초코 쿠키님은 훌륭한 영웅이세요. 다크초코 쿠키님 덕분에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걸요.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주세요. 아니면, 다크초코 쿠키님을 믿는 저라도 믿어주세요. 마법검을 파괴한 것도…"

 

우유맛 쿠키가 멈칫했다. 우유맛 쿠키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아래로 내리며 다크초코 쿠키가 말했다.

 

"혼자 있고 싶구나. 내게 시간을 다오."

 

우유맛 쿠키의 손을 놓은 다크초코 쿠키는 그대로 우유맛 쿠키를 지나쳐 걸어갔다. 우유맛 쿠키가 다크초코 쿠키를 부르려 한 순간, 문득 다크초코 쿠키가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보지 않고서 우유맛 쿠키에게 말했다.

 

"이곳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등 뒤에 우유맛 쿠키를 남겨둔 채 다크초코 쿠키는 저벅저벅 하는 발소리와 함께 숲을 떠났다.



 

*



 

왕국으로 돌아온 다크초코 쿠키는 그 길로 우유맛 쿠키의 집을 나와 따로 쿠키 하우스를 구했다. 약속대로 숲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밖에 없어.'

 

'강해져야 해.'

 

'내가, 강해져야…'

 

그것은 아마도 과거의 자신의 목소리. 어둡고 단호한, 굳은 결심과 절실한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

 

강해져야 한다니, 무엇을 위해?

 

그런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에 들리는 것은 다른 목소리였다.

 

'혼자서 그리 애쓰지 마라.'

 

'넌 아직 어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언제, 왜 나눈 대화인지는 모른다. 단지 그 말에 반발심을 느꼈던 기억은 났다.

 

'그렇기에 네가 싸우는 법을 모른다는 거다.'

 

그럼 올바르게 싸우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만큼 강해져도 아버지의 눈엔 부족하다는 건가. 오기가 생겼고, 조바심이 났다. 아버지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둠의 힘을 탐냈던 걸까.

 

왕국의 쿠키들이 어둠 마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에게도 어둠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겁도 없이 어둠의 힘에 손을 댔던 것이다. 우유맛 쿠키의 말에 의하면 마법검을 얻기 전에도 이미 충분히 강한 검사였을 텐데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신은 힘을 탐닉하는 괴물이었던 걸까. 강함에 도취되어 다른 건 상관하지 않는 미치광이였던 걸까. 그렇지 않다면 왜 제 손으로 아버지를 베고 왕국을 몰락시켰단 말인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고작 그런 이유로. 마법검을 부쉈다고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었다는 건, 마법검에 자아를 완전히 지배당했다는 뜻이 아닐까?

 

우유맛 쿠키에게는 물을 수 없었다. 언제나 올곧은 눈으로 바라보는 우유맛 쿠키에게만큼은. 숲에서 눈을 뜨고 우유맛 쿠키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맑은 눈이 예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우유맛 쿠키의 눈에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님이 훌륭하다는 믿음.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편이라는 믿음. 똑같이 나약하고 부드러운 몸을 가졌을 뿐인 쿠키에게 어떻게 그런 믿음을 줄 수 있을까. 다른 쿠키를 믿을 수 있는 그 용기는 분명 영웅의 용기이리라. 다크초코 쿠키는 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우유맛 쿠키의 믿음을 배반할까 봐서. 과거를 알기 전에도 우유맛 쿠키가 의식되었지만, 자신의 초라한 과거를 알고 난 뒤에는 더욱 우유맛 쿠키의 곁에 머무를 수 없었다. 따로 살게 된 뒤로 다크초코 쿠키는 우유맛 쿠키를 거의 만나지 않았다. 왕국에서 종종 마주치기는 했지만 다크초코 쿠키 쪽에서 먼저 외면해버렸다. 

 

하다못해 이유라도 확실히 알면 좀 떳떳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더라도 말이다. 다크초코 쿠키는 석류맛 쿠키와 감초맛 쿠키를 찾아갔다. 어둠마녀 쿠키 밑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고 하니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감초맛 쿠키는 혀를 차며 대꾸했다.

 

"우리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이는 아니었거든? 그러려고 해도 네가 제일 비협조적이었다고."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할 말이 없었다. 기억도 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아는 게 없다는 건 사실인 듯했다. 석류맛 쿠키에게도 별로 도움되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크초코 쿠키는 자색고구마 쿠키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퓨어바닐라 쿠키도 떠올렸지만, 문 앞에서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 퓨어바닐라 쿠키에게 다크초코 쿠키는 친구를 벤 파렴치한 친구 아들일 터다. 한결같이 친절하게 대해주기는 했지만, 어쩌다가 제가 마법검으로 아버지를 베었을까요라고 묻기는 껄끄러웠다.

 

공작소에서 화를 내며 솔방울새 인형을 만들던 자색고구마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의 질문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우유맛 쿠키 그 녀석은 어디에 두고?"

 

"그 애는 내게 너무 무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고 싶다."

 

"뭐야 그거, 내가 성격 더럽다는 소리 아니냐?"

 

자색고구마 쿠키는 툴툴거리면서도 순순히 다크초코 쿠키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강해지고 싶은 이유라니, 그런 게 따로 있나? 전사라면 당연한 거 같은데."

 

"그런가?"

 

"그렇고말고. 싸움! 힘! 강함! 자기보다 센 녀석과 붙어보고, 이겨보고, 그래도 더 강해지고 싶은 게 전사의 본능이지!"

 

미적지근한 다크초코 쿠키와 달리 자색고구마 쿠키는 자기 말에 흥분한 것 같았다. 쾅 소리를 내며 작업대를 내리치자 솔방울새 인형이 작업대 위에서 춤을 췄다. 자색고구마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서 네 녀석과도 싸워보고 싶었고 말이다."

 

다크초코 쿠키는 피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자색고구마 쿠키를 마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앙?"

 

"우리가 싸웠나?"

 

맥 빠지는 표정이 된 자색고구마 쿠키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앉았다.

 

"안 싸웠어. 우유맛 쿠키 녀석이 말 안 하던?"

 

"날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고 들었다."

 

"그래. 결국 못 만났다. 새 투기장 챔피언 녀석이란 게 누군지 얼굴이나 보자 싶었는데. 여기 와서야 만난 거야. 친선전은 해봤지만, 투기장이랑 그게 같냐?"

 

다크초코 쿠키는 대답이 없었다.

 

감초와 석류는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자색고구마 쿠키는 강해지고 싶은 건 전사의 본능이라고 했다. 그럼 역시 자신은 그저 싸움을 좋아하는 쿠키였던 걸까. 그래서 마법검을 원했던 건가. 다크초코 쿠키의 얼굴을 슬쩍 본 자색고구마 쿠키가 투덜거리며 지나가는 말처럼 덧붙였다.

 

"내가 아는 전사들이 그렇다는 거고, 네 녀석이야 어땠는지 모르지."

 

다크초코 쿠키가 시선을 들었다.

 

"그건 무슨 뜻이지?"

 

"난 그때 널 만난 적도 없단 말이다. 나야 그냥 싸움꾼이지만 넌 그 뭐냐, 왕자였다며?"

 

자색고구마 쿠키가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이것저것 골치 아픈 이유가 있었던 거 아냐?"

 

쿠르르릉.

 

다크초코 쿠키는 공작소 밖을 쳐다보았다.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소리였다. 하늘이 울리는 듯한 소리였지만 천둥과는 달랐다.

 

다크초코 쿠키가 무슨 소린지 아냐고 묻기도 전에 자색고구마 쿠키는 화를 내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저 소리가 왜 여기서 들리는 거야? 열받게!"

 

말하는 걸로 봐서 소리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괄괄한 성격의 자색고구마 쿠키지만 전사로서의 직감은 뛰어나다. 자색고구마 쿠키를 따라 공작소 밖으로 나온 다크초코 쿠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드래곤이 토해낸 화염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



 

우유맛 쿠키는 두 눈을 의심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틀림없다. 파르페디아에서 물리쳤던 것과 같은 드래곤이다. 그 후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차원문은 분명히 닫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다시 열린 걸까. 설마 마법검의 영향일까.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은 왕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건물이 부서지고 근처에 있던 쿠키들은 부상을 입었다. 도망치는 쿠키들과 그런 쿠키들을 대피시키는 쿠키들, 싸우려는 쿠키들이 뒤섞였다. 역시나 드래곤을 상대해 본 적이 있는 라떼맛 쿠키와 아몬드맛 쿠키가 어느 샌가 앞장서서 지휘하고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퓨어바닐라 쿠키도 다친 쿠키들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들은 중앙과 후방을 담당하는 쿠키들이다. 전방은 아직 비어 있었다.

 

우유맛 쿠키는 드래곤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렸다. 달리면서 눈으로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계시지?'

 

그의 사명은 다른 쿠키들을 지키는 것이지만, 다크초코 쿠키도 거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혼란의 틈새에서 다크초코 쿠키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발견한 것은 공작소 쪽에서 달려오는 자색고구마 쿠키였다.

 

"자색고구마 쿠키님!"

 

반갑게 외치며 다크초코 쿠키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려던 우유맛 쿠키에게 자색고구마 쿠키가 벌컥 성을 냈다.

 

"어이, 우유맛 쿠키! 그 녀석 좀 말려!"

 

그 녀석이라니? 우유맛 쿠키는 자색고구마 쿠키가 가리킨 곳을 본 우유맛 쿠키는 바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다크초코 쿠키가 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트레이 밑이 어둡다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인 모양이다.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를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큰 소리로 부르자 다크초코 쿠키가 그를 힐끗 돌아보았다.

 

"저도 같이 갈게요!"

 

"아니, 넌 여기에 있어."

 

"혼자 가시면 위험해요!"

 

아무리 다크초코 쿠키라지만 상대는 몸집이 열 배쯤 되는 드래곤이다. 파르페디아에서도 여러 쿠키가 힘을 합쳐 겨우 물리쳤다. 한 쿠키가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다크초코 쿠키의 대답은 소음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여기에서 다른 쿠키들을 지키라는 말 같았다. 다크초코 쿠키는 따라잡히기는커녕 오히려 거리를 벌렸다. 우유맛 쿠키도 자색고구마 쿠키도 느린 편이 아니지만, 체구가 날렵한 다크초코 쿠키가 유리하다. 게다가 다크초코 쿠키는 이런 일을 수천 번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장애물들을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장간으로 날아오는 드래곤의 브레스를 우유맛 쿠키가 방패로 막아내자, 그 사이 다크초코 쿠키는 한참 앞서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의 뒷모습을 보며 우유맛 쿠키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제가 여기 있으면, 다크초코 쿠키님은 누가 지켜드리나요?

 

"저거 곤란한데."

 

대장간에서 무기들을 챙겨 나온 아보카도맛 쿠키가 혀를 끌끌 찼다.

 

"저 친구, 그 습관 아직 안 고쳤지?"

 

무슨 말인가 하고 아보카도맛 쿠키를 돌아보던 우유맛 쿠키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다크초코 쿠키가 들고 있는 무기는 아보카도맛 쿠키가 만든 대검이다. 보검 못지않게 튼튼하고 강력한 무기지만, 마법검이 아니니 당연히 마법은 쓸 수 없다. 드래곤을 상대로 실수라도 했다간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런 중요한 문제를 잊고 있었다니.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를 눈으로 좇았다. 왕국에는 다른 돌격형 쿠키나 방어형 쿠키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유맛 쿠키처럼 주변의 쿠키들을 먼저 보호하느라 쉽게 전방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제일 가까이에 있는 건 뒤따라가던 자색고구마 쿠키였지만…

 

'너무 멀어.'

 

지금 다크초코 쿠키는 혼자다. 초조한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우유맛 쿠키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그 방법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하는 수밖에 없다.

 

우유맛 쿠키는 중앙에 있는 라떼맛 쿠키에게 달려갔다. 드래곤의 공격을 피하느라 바쁘기는 했지만 원거리로 공격하는 마법사들은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최전방으로 데려가달라는 우유맛 쿠키의 부탁에 라떼맛 쿠키는 난처한 기색을 했다.

 

"이 지팡이는 한 명밖에 태울 수가 없어. 두 명을 태우면 추락할 거야."

 

"태워주지 않으셔도 돼요. 멀리서 저를 던져 주세요."

 

"뭐라구? 그런 짓을 하면 네가 위험해져."

 

"제발 부탁드려요."

 

라떼맛 쿠키는 고민하는 얼굴로 다크초코 쿠키 쪽을 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보자.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 무게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거야. 대신 꽉 잡아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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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초코 쿠키는 제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슴속이 뜨거운 불길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또 다시 잃을 수는 없어.'

 

'똑같은 과오를 반복할 수는 없어.'

 

어디서인지 알 수 없는 힘이 몸속에서 용솟음쳤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감각. 이런 기분이었나. 이걸 위해 싸움을 계속해왔던 것일까. 자색고구마 쿠키의 말처럼 전사는 싸우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 땅을 박차고 오른 다크초코 쿠키는 드래곤의 턱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덤벼라!"

 

강력한 일격은 아니다. 드래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한 공격이었다. 귀찮은 초파리를 쫓아내는 것처럼 드래곤이 다크초코 쿠키가 있는 쪽으로 거대한 앞발을 휘저었지만 다크초코 쿠키는 이리저리 뛰며 피했다. 날개나 꼬리도 아플 테지만 저 육중한 앞발과 날카로운 발톱에 맞았다간 치명상이다. 모든 공격을 피한 다크초코 쿠키가 발등을 칼로 긁어내자 드래곤이 몸을 낮추며 으르렁거렸다. 이제야 다크초코 쿠키를 진지한 상대로 인식한 모양이다. 다크초코 쿠키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네 적수는 나다."

 

자신의 등 뒤에는 왕국이 있다. 우유맛 쿠키가 사랑하는 왕국. 쿠키들이 살아가고 아이들이 뛰노는 왕국.

 

'절대 물러서지 않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싸움뿐이라면 싸우면 된다. 고결한 영웅은 될 수 없어도 목숨을 거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몸을 굴려 화염을 피한 다크초코 쿠키는 재빨리 자세를 다시 잡았다. 드래곤이 브레스를 날리기 직전에는 빈틈이 생기지만, 다크초코 쿠키는 좀 더 시간을 끌다가 제대로 공격할 생각이었다. 앞발 공격이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날개 휘젓기. 또 다시 땅 위로 몸을 굴린 다크초코 쿠키는 그대로 드래곤의 등 뒤로 돌아가 꼬리에 올라탔다. 지금이라면 다크초코 쿠키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드래곤도 왕국을 공격하지 않을 테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다. 두꺼운 몸통 위를 똑바로 달려간 다크초코 쿠키는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리며 얼굴을 향해 검을 크게 내려쳤다.

 

"이걸로 끝이다!"

 

검격은 예상대로 드래곤의 얼굴에 명중했다. 하지만 공중에서 회전하며 다크초코 쿠키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대로라면 방금의 일격에서 번개가 함께 꽂혀야 한다. 그가 자랑하던 기술이다. 마법검이 부여해주는 힘이다. 번개를 사용하기 위해 높이 뛰어오르는 버릇이 들었다는 것이 그제야 기억났다. 번개의 연쇄를 넓게 펼칠 수 있고, 강력한 힘의 반동으로 그도 적에게서 먼 곳에 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개를 맞은 적은 잠깐이지만 공격을 못하게 되어서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도 생긴다.

 

그 번개가 이제 없었다.

 

땅에 떨어진 다크초코 쿠키는 그대로 몇 바퀴 굴러갔다. 검으로 땅을 긁으며 간신히 멈췄지만 드래곤의 커다란 입은 이미 다크초코 쿠키를 향하고 있었다. 코에 정통으로 검격을 맞은 드래곤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피할 수 없어.'

 

거리가 너무 가깝다. 이 거리에서는 검격을 날려도 브레스를 상쇄할 수 없다. 붉은 입 사이로 이글거리는 화염이 보였다.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크초코 쿠키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드래곤이 내뿜은 브레스가 다크초코 쿠키의 대검을 삼키려는 바로 그 순간.

 

"날 먼저 상대해야 할걸!"

 

하얀 방패가 다크초코 쿠키의 앞을 막아섰다.



 

*



 

다크초코 쿠키는 자신의 눈앞을 가린 등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화염은 다크초코 쿠키의 부스러기 한 톨도 그을리지 못했다. 우유맛 쿠키의 방패가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님! 괜찮으세요?!"

 

다크초코 쿠키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브레스가 끝난 후 드래곤은 적이 한 명 늘어난 것을 보고 당황할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왜 여기에 왔지? 다른 쿠키들을 지키라고 했잖아!"

 

불길이 멈추자마자 다크초코 쿠키는 훌쩍 뛰어올라 드래곤의 날갯부리를 검으로 베며 소리쳤다.

 

혼자 상대할 때는 날개를 공격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었다. 드래곤이 앞발만 휘둘러도 사정거리에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둘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드래곤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길수록 유리하다.

 

과연 다크초코 쿠키가 멀쩡히 살아 있고 우유맛 쿠키까지 늘어난 것을 발견한 드래곤은 주춤했다. 누구부터 공격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다크초코 쿠키의 의도를 이해한 우유맛 쿠키는 반대편으로 돌아가며 외쳤다.

 

"다크초코 쿠키님도 지켜드릴 거예요!"

 

"무모한 짓이었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었다.

 

다크초코 쿠키를 향해 앞발이 날아왔다. 다크초코 쿠키는 검을 내리그으며 옆으로 피했다. 동시에 우유맛 쿠키가 방패 끝으로 드래곤의 뒷발꿈치를 찍었다.

 

"방금 전에 위험하셨잖아요?"

 

"그건, 실수였다."

 

약간 느려진 두 번째 앞발.

 

"왜 혼자서 뛰어드신 거예요? 다크초코 쿠키님이야말로 무모하셨어요."

 

"너도 알 텐데. 나는 강하다. 다른 쿠키들까지 위험에 끌어들일 필요가 없어."

 

살짝 빗나간 세 번째 앞발.

 

"그렇지 않아요."

 

한쪽 날개 휘젓기.

 

"쿠키들은 함께할 때 강해질 수 있어요. 서로를 믿을 때 용기를 낼 수 있어요."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브레스.

 

"우유맛 쿠키, 넌 선한 아이라 쿠키를 쉽게 믿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쿠키는…"

 

"저랑 다르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방패로 다시 한 번 다크초코 쿠키를 보호하며 우유맛 쿠키가 소리쳤다. 브레스의 방향을 알기에 이번엔 한 팔로 방패를 치켜들고 다크초코 쿠키를 보았다.

 

"다크초코 쿠키님도 믿으셨어요!"

 

"뭐?"

 

"마법검을 부술 때 다크초코 쿠키님도 저를, 왕국의 쿠키들을 믿으셨어요." 

 

'반려로서… 동료 영웅으로서, 널 믿고 맡기마.‘

 

"그렇기에 용기를 낼 수 있다고 하셨어요!"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저를, 쿠키들을 다시 한 번 믿어주시면 안 되나요? 저희는 이제 다크초코 쿠키님께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될 수 없나요?"

 

다크초코 쿠키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우유맛 쿠키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혼자서 오랫동안 힘들게 싸우셨잖아요. 외로우셨잖아요. 왜 다시 그 길을 가려고 하시는 거예요. 왜 자꾸만 혼자 짊어지려고 하시는 거예요…."

 

'나밖에 없어.'

 

'왕국을 구할 쿠키는 나밖에 없어.'

 

'아버지를, 왕국의 쿠키들을 지켜야 해. 내가 강해져야 해.'

 

'그래야 아버지와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거였나. 강해지려고 했던 이유가.

 

"거기 두 쿠키! 방패 꼭 잡고 있어!"

 

다크초코 쿠키와 우유맛 쿠키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마자 드래곤의 브레스와는 다른 충격이 방패 너머로 전해져 왔다. 라떼 마법이었다. 뒤이어 멀리서 목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들렸다.

 

"거친 맛을 보여주지!"

 

다크초코 쿠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크초코 쿠키와 우유맛 쿠키가 시간을 버는 사이 다른 쿠키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몇몇 대담한 쿠키는 라떼맛 쿠키가 우유맛 쿠키를 데려온 것과 같은 방법으로 데려왔다. 그러느라고 우유맛 쿠키와 다크초코 쿠키를 도와주지 못했던 것이다. 파르페디아에서, 그리고 우유맛 쿠키와 다크초코 쿠키 둘이서는 인원이 적어서 고전했지만, 여러 쿠키들이 힘을 합치면 물리칠 수 있는 상대였다.

 

'넌 아직 싸우는 법을 모른다.'

 

'혼자서 그리 애쓰지 마라. 전사들은, 쿠키들은 홀로 강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네게 좋은 검과 튼튼한 팔이 있더라도 우리는 한마음으로 싸우기에 강하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네가 배워야 하는 것은 다른 쿠키를 믿고 의지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도 자신의 말을 잘 실천하는 편은 아니었다. 다크카카오 쿠키는 강했기에 왕국을 세울 수 있었고, 왕이었기에 모두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식인 다크초코 쿠키와 짐을 나누어지려 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니 알 수 있었다. 다크카카오 쿠키는 자신이 이미 경험했기에 다크초코 쿠키가 어떤 유혹을 느낄지 짐작했다. 강해지고자 하는 유혹. 혼자 책임지려는 유혹. 그건 다크카카오 쿠키가 극복해야 했던 약점이었다. 

 

"내가 어리석은 짓을 했군."

 

"다크초코 쿠키님?"

 

우유맛 쿠키가 머뭇머뭇 다크초코 쿠키를 불렀다. 감정적인 대화를 나눈 직후라 어색한 모양이었다. 다크초코 쿠키는 긴 설명 대신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고맙다. 난 언제나 네게 받기만 하는구나."

 

손을 뻗어 우유맛 쿠키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은 다크초코 쿠키가 멈칫했다. 하지만 저번처럼 손을 내리지는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의 승리의 전령. 우유맛 쿠키도 다크초코 쿠키를 향해 웃었다.

 

"다크초코 쿠키님은 이미 저에게 많은 걸 주셨는걸요."

 

우유맛 쿠키는 다크초코 쿠키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내려 자신의 가슴 위에 얹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



 

"다크초코 쿠키님, 짐 다 챙기셨어요?"

 

"응."

 

"겨울용 옷도 넣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추위는 안 타니까 괜찮아."

 

"하지만 짐이 너무 단출한걸요."

 

우유맛 쿠키의 걱정 가득한 말에 다크초코 쿠키는 피식 웃었다.

 

"처음 하는 여행도 아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드래곤이 나타난 건 열흘 전. 다친 쿠키들은 무사히 치료를 받았고 무너진 건물들도 대부분 복구되었다. 원인은 마법사들이 아직 조사하고 있었지만, 마법검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만일에 대비해 퓨어바닐라 쿠키는 그동안 계속해 온 연구로 마법검을 더 단단히 봉인했다. 어둠의 힘이 악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가방을 든 다크초코 쿠키를 보며 우유맛 쿠키가 말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내 발로 떠나왔으니, 내 발로 찾아가야지."

 

다크초코 쿠키는 쿠키 하우스와 왕국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곳도… 내가 없어도 지킬 자들이 충분한 것 같고."

 

퓨어바닐라 쿠키에게는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함께 따라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던 퓨어바닐라 쿠키는 말없이 다크초코 쿠키의 손을 꼭 쥐었다가 놓아주었다. 인사할 쿠키에게는 모두 했다. 한 명만 빼고.

 

"하지만…"

 

마지막 쿠키를 돌아보며 다크초코 쿠키가 말했다.

 

"네가 함께 있으면 더 용기가 날 것 같구나."

 

다크초코 쿠키는 우유맛 쿠키의 맑은 눈을 응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가주겠니?"

 

우유맛 쿠키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폈다.

 

"안 물어보시면 제가 조르려고 했어요."

 

우유맛 쿠키가 마주 손을 내밀었다. 흔들림 없는 굳건한 손.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아갈 수 있었다. 그의 용기가 함께 있으니까. 우유맛 쿠키와 손을 맞잡고 다크초코 쿠키는 새로운 모험을 떠났다.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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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윅스는 이스라엘 회사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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